"자전거를 생산하는 국가는 선진국이라고 생각합니다."
3일 대구 동구 아양교 인근 코렉스 매장에서 만난 전종호(68) 대표는 "자전거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복잡한 공학의 집약체로 선진국의 지표라 할 수 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50년간 자전거와 함께 살아온 전 대표는 대구공고 출신으로 학교에서 배운 기술 덕분에 1973년 '신원호 자전거'에 취직했다. 자전거 산업에 발을 들인 그는 현재 스마트 자전거 등 회사명이 수차례 변하고 경영진도 바뀌었지만, 실력을 인정받아 15년간 근무했다. 그는 개발부장과 연구실장까지 거친 뒤 퇴직했다. 전 대표는 "자전거를 판매하던 회사 이름은 바뀌었지만, 오랫동안 자전거 개발을 위해 노력해왔다"라며 "오랫동안 일하다 보니 자전거 소비는 늘어나지만 제조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항상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 대표는 퇴사 후 그동안 길러온 실력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중 수입에 의존하고 있던 경륜 선수용 자전거를 제작하기로 했다. 그는 "기어나 체인 등 부품은 국산화가 어렵겠지만, 국내에서도 멋진 자전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라며 "일반 자전거는 공장에서 찍어내 만들면 되지만 각 선수에 알맞은 크기의 자전거를 만드는 작업이다 보니 더욱더 어려웠다. 촌각을 다투는 레이싱 경기이다 보니 한치의 오차도 용납할 수 없는 정밀과학이 담긴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10년간 2천여 대의 명품 수제 자전거 '가야스(GAYAS)를 만들었다. 전 대표는 "고향 고령은 대가야 문화의 중심이자 수도였다. 이 이름을 차용해 이름을 지었다"며 "품질 좋은 재료는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아 외국에 의존했지만, 자전거 구성에 가장 중요한 프레임을 국내에서 직접 제작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회에서 가야스를 탄 선수가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면 직접 경기에 참여해 우승한 것만큼 기뻤다"면서 "그때 희열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전 대표가 제작한 가야스 자전거는 여전히 인기가 많다. 출시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자전거가 있는가 하면 새롭게 도색한 모습을 인터넷에서 보이기도 한다. 그는 "오래전에 만든 자전거를 아직도 사랑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가야스 자전거가 사랑받고 있는 것은 일직선의 쇠파이프로 만들어진 대부분의 경륜 자전거와 달리 유선형의 프레임 등의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전 대표는 "모래를 넣어 원통을 유지한채 구부릴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독특한 형태의 자전거를 만들었다"면서 "판매 당시 중·고등학생, 대학생, 일반부, 실업팀 구분 없이 많은 선수들이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안타깝게도 그가 1992년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만든 뒤 제조 사업을 접었다. 이후에는 자전거 매장을 차려 평범한 아저씨로 살아가고 있다. 전 대표는 "각종 제도와 경제적 문제 등 악조건이 겹치면서 결국 제조에서 손을 놓게 됐다"며 "가지고 있던 제조 도안과 공구 등을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눠주고 보니 로고 필름 한 장만 남았다. 살아온 날에 대해 후회는 없지만, 자전거를 만들던 그날을 추억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자전거 매장을 운영하며 해마다 전국생활체육대축전에 선수로 출전하고 있다. 지난 2019년에는 산악자전거를 타고 60~69세가 참여하는 슈퍼그랜드 마스터1에 참여하기도 했다. 전 대표는 "자전거를 알게 돼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면서 "자전거가 생활체육으로서 더욱 발전하고 많은 사람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전 대표는 가야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앞으로 미래 먹거리 산업을 위해 자전거 제조산업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우리나라 굴지의 자동차 관련 기업들이 자전거를 만들던 회사에서 시작했다"며 "친환경과 건강을 위해 자전거는 존재할 것이며 지구가 멸망하는 날이 오더라도 마지막 이동수단은 자전거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에서 관심을 두고 기술개발을 돕는다면 미래 먹거리로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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