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농경사회에서는 날씨와 자연의 변화가 중요했다. 농민들은 낮과 밤의 길이, 달의 크기 등을 통해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유추하였고 나라에서는 달력·책력 등의 연구가 중요한 과제이자 힘이었다. 시대에 따른 역법은 다양하게 변화하였고, 현재 사용되고 있는 음력은 태양력과 태음력을 보완하고 24절기가 결합된 태음태양력이다.
일제강점기 을미개혁의 하나로 고종 32년(1895년) "태양력을 쓰되, 개국 504년(1895) 11월 17일(음력)을 개국 505년(1896) 1월 1일로 삼으라"고 공포하여 근대화를 위한 양력(그레고리력)을 도입하였다. '건양(建陽·양력을 세운다)'이라는 연호를 통해 태양력 채택을 기념하기도 했다.
일본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으로 단발령과 함께 음력 1월 1일은 미신적이고도 전근대적인 낡은 관습으로 치부하여 구정(舊正)이라고 부르고, 양력 1월 1일을 신정(新正)이라 하여 새로운 시대에 따라야 할 것임을 강요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음력설을 보내자 명절 음식을 하는 곳들의 영업 중지, 조퇴 금지령 등 각종 통제와 제재를 가하였다. 양력설과 음력설을 쇠는 이중과세(二重過歲)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크고, 공휴일 수가 많다는 등의 이유로 음력설 폐지정책은 1984년까지 유지되었다. 1985년 '민속의 날'이라는 명칭으로 음력설이 공휴일로 지정되었고, 1989년 '설날'이라는 이름을 되찾으며 3일 연휴로 개정되었다.
음력설은 고수되었지만 지속적인 억압의 영향으로 민속문화는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섣달그믐(음력 12월 31일)은 '작은 설'이라 하여 한해를 잘 마무리하는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어른이나 조상신 등에게 '묵은 세배(그믐세배)'를 하였다. 수세(守歲)는 한해를 무사히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지킨다는 뜻으로 집안 곳곳의 등잔을 환하게 켜두고 새벽닭이 울 때까지 자지 않았다.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속신으로, 잠이 든 사람의 눈썹에 흰 가루를 묻히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설날 이른 아침 복조리를 구매할수록 길하다고 여겼고, 장수와 재복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벽이나 출입문 위에 걸어두었다. 연날리기는 섣달그믐부터 시작하여 대보름까지 즐겼다. 보름날의 연은 액연(厄鳶)이라 하여 멀리 날려 보내고, 대보름 이후에는 연을 날리지 않았다.
음력 1월은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가족과 공동체가 화합하는 달로 이 시기를 올바르게 보내야 일 년을 무사히 지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정월(正月)이라 부른다. 신축년(辛丑年)의 새로운 시작, 설날을 맞아 포용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삶의 안녕과 번영을 이루는 풍요로운 해가 되길 염원한다.
최현정 대구보건대 인당뮤지엄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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