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탁점(琢点)을 기대하며

대구 수성구 두산동 고층 아파트 스카이라인 위로 보름달이 떠 오르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대구 수성구 두산동 고층 아파트 스카이라인 위로 보름달이 떠 오르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박상전 경제부 차장
박상전 경제부 차장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전 대구 주택건설 업체들의 시장 장악력은 대단했다. 전국 주택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으며, 지역에선 80%를 싹쓸이했다. 당시 "대기업도 필요 없다. 우방과 청구 같은 회사만 지역에 남아 있어도 먹고살 길은 충분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런 위세는 불과 30년도 안 돼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대구에서 향토 기업이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이 15%대로 하락해 예년에 외부 업체가 간신히 붙들고 있던 시장보다도 작게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쪼그라든 시장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지역 업체들로서는, 이제 변화를 모색하는 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과 직결된다.

다행히 최근 지역에서는 여러 가지 신선한 변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우선 지역 주택건설 업체에 용적률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대신 청년 등 특정 계층을 지원하는 소규모 아파트 건설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주목된다.

현재 20%대에 머물러 있는 지역 업체 용적률 인센티브를 최대 30%까지 늘리고, 늘어난 용적엔 신혼부부와 청년 등을 위한 소규모 주택 건설을 강제화하는 방안이다. 그렇게 되면 지역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고,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은 소규모 아파트 공급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주목되는 부분은 민간 업체를 대표해 이동경 도원투자개발 대표가 아이디어를 냈고, 김창엽 대구시 도시재창조국장이 즉각 검토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변화를 꾀하는 민간의 노력에 시정이 즉각 응답하는 시스템이 작동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두 사람은 빠르면 다음 주 중 만나 일을 매듭짓는다.

일부 젊은 인재들이 대구로 회귀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40대 초반인 장덕용 제이에프개발 대표는 최근 경산에 사무실을 열었다. 그는 미국 뉴욕과 수도권에서 부동산 개발·건설업을 하면서 자본금 1천억원대 회사를 구축했다. 지역에 뿌리를 두고자 미국 컬럼비아대 유학을 마친 뒤 고향에서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주택·건설업 쪽으로 사업 확장을 시도하고 있는 2세들이 서울 유수의 대기업을 포기하고 대구에 둥지를 튼 점도 주목된다. 금강엘이디와 한창실업 사장의 아들들은 최근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등 굴지의 회사에 사표를 내고 가족과 함께 대구로 이사해 부친의 사업을 이끌고 있다.

오랜만에 지역에 젊은 인재가 몰리고 건설업계 쪽 민·관 시스템에 변화가 생긴 가운데, 정부는 대대적인 공급 정책을 발표하는 등 기존의 '세금 폭탄' 부동산 정책에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세금 부담 정책은 원래 목적인 투기 방지보다 원재료(아파트)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기에 이번 정부의 전향적 부동산 정책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초선 의원 시절 줄탁동시(啐啄同時)란 말을 인용하면서 '탁점'(琢点)을 강조한 바 있다. 밖에서 어미 닭이 부리로 쪼는 점과 안에서 병아리가 쪼는 위치가 맞아떨어져야 달걀 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때 어미 닭이 밖에서 너무 세게 쪼면 병아리가 다치고, 안에 있는 병아리는 아무리 쪼아 봐야 껍질을 깨기에는 힘에 부쳐 안과 밖의 부리가 한 점에서 적절한 힘으로 부딪쳐야 부화에 성공한다.

모처럼 지역 건설업계에 부는 변화와 정부의 전향적 정책이 한 점에서 만나 지역 건설업이 알을 깨고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국토부와 대구시, 부동산 시장과 지역 업체 변화상의 부리가 한곳에서 만나 껍질이 시원하게 깨지는 '탁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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