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다시 기억하는 '대구의 품격'

박영석 전 대구MBC 사장(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
박영석 전 대구MBC 사장(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

"대구에는 공황도, 폭동도, 혐오도 없다. 절제와 고요함만 있다."

지난해 2월 하순 대구에서 코로나19가 한창 불붙기 시작할 무렵 혼란과 무질서로 가득한 도시를 예상하며 대구에 온 미국 ABC 이안 패널 기자의 취재 일성이다.

그는 시민들 모두가 질서를 지키며 침착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에 놀라면서 "신종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뉴 노멀이 된 지금 대구는 이제 많은 이들에게 삶의 모델이 될 것"이라고 당시 대구의 모습을 전했다.

국내 한 언론은 '사람의 인격'이 오히려 위기에서 드러나듯 '도시의 품격' 또한 극한 상황에서 확인된다며 현실에서 그것을 체감할 수 있는 곳이 대구라고 했다. 그러고는 품격 있게 바이러스와 싸우는 대구는 결국 승리할 것이라며 '대구의 품격'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중국 우한에 이어 대구가 두 번째로 코로나19 진앙이 되면서 지난해 봄은 세계의 눈이 24시간 대구를 향했다. 세계인들에게 비친 대구는 특별했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사지나 다름없는 현장에서 몸을 던져 코로나와 싸우는 의료진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세계인들의 가슴을 울렸다. 국내외 모든 언론들이 이러한 모습들을 전하기 위해 취재 경쟁을 벌였고 하나같이 놀라움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대구 수성구에 있는 한 의원에서 지난해 2월 18일 31번 확진자가 처음 나오면서 대구는 18일 만에 누적 확진자가 5천 명을 넘어서는 팬데믹에 빠졌다. 대구신천지교회가 진원지였다.

걷잡을 수 없는 파고였지만 시민들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방역 당국에 귀를 기울이며 거리두기를 하고 이동을 제한했다. 도로와 골목, 거리는 일순간에 적막감이 들 정도로 텅 비워졌다. 정적과 함께 모든 것이 멈추었지만 무질서와 혼란은 어느 곳에서도 발생하지 않았다. 사재기도 없었고 도시를 탈출하는 사람, 두려움에 떠는 사람도 없었다.

첫 확진자가 나온 지 52일 되는 4월 10일, 대구에서는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코로나 진원지였던 대구가 다시 신규 확진자 '0명'을 기록한 것이다.

이 무렵 대구가 중심이 된 'K방역'은 이미 세계인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K방역을 전수받으려는 나라들이 줄을 서는 모습이었다.

K방역의 주역은 역시 시민들이었다.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대구의 품격을 지키며 거리두기와 이동 제한을 실천하고 모든 희생을 묵묵히 감내한 결과물이었다. 물론 전국에서 달려온 의료진과 구급 대원,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쪽잠을 자며 24시간 비상체제를 유지해 온 일선 공무원 등 방역 당국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뤄낼 수 없었을 것이다.

코로나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거리두기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 봄 K방역을 이뤄낸 성숙한 시민의식은 모두에게 무한한 자부심이며 소중한 자산이다. 1년이 되는 지점에서 우리는 세계인의 주목과 찬사를 받았던 '대구의 품격'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대구의 정신으로 승화시켜 나가야 한다.

2월 21일 대구 시민의 날을 시작으로 대구시민주간이 이어지고 있다. K방역의 중심 '대구의 품격'을 다시 새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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