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리학(주자학)의 대가 퇴계 이황.
그의 후손은 설 차례상을 어떻게 차릴까.
안동 퇴계 종택을 찾았습니다.
떡국, 북어, 전, 과일, 간장.
다섯 음식에 술 한잔이 전부였습니다.
과일은 사과·배·감·귤 하나씩에
대추 셋, 밤 다섯을 한곳에 담았습니다.
퇴계 불천위와 4대조 위폐를 모신 사당에서
위폐마다 상을 차리지만 소박했습니다.
제례문화 지침서 주자가례(朱子家禮)의
가르침에 대대로 이렇게 차려왔습니다.
특이하게도 추석 차례는 별도로 지내지 않고
10월 시제(묘사)로 대신해 왔습니다.
기제사는 몇 해 전부터 오후 6시에 지냅니다.
지난달 20일, 퇴계 불천위 제사는
450년 만에 온라인으로 치렀습니다.
후손들은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으로
사당에서 중계한 화면을 보며 절을 올렸습니다.
16대 종손 이근필(90)씨는
"형식은 변해도, 간소하게 차려도
정성을 다하는 것이 최고의 예"라 했습니다.
"제사상에 유밀과(油蜜菓)를 올리지 말라"
번거롭고 비싼 제물을 경계한 퇴계의 유훈을
종가는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습니다.
주자가례에 따르면 설 명절 차례(茶禮)는
새해를 맞아 조상에게 술 한잔, 차(茶) 한잔,
과일 한 접시로 예(禮)를 올리는 의식이었습니다.
곁들이는 음식은 과(果)로 족했습니다.
술은 한 잔만, 축문도 안 읽는 게 예법이었습니다.
차례는 제사보다 간소했지만
대부분의 집안에서 제사처럼 지내왔습니다.
시절이 좋아져 여유가 생기고, 체면도 세우려니
더 많이 차려야 '잘난 집안' 소릴 들었습니다.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柹)….
주자가례에도 없는 진설법이 생겨나
귀한 자식들이 '상놈'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
'남의 제사에 감놔라 배놔라 하지마라'.
차례 상차림은 가문의 관습. 정답은 없습니다.
상차림이 즐겁다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한국국학진흥원 김미영 박사는
"나라와 종교에 따라 조상을 기억하는 방식이 다른 만큼,
과도한 상차림으로 여러 문제가 일어난다면
과감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설날 아침 세뱃돈에 설레던 그 시절
다보탑의 십원, 이순신의 백원….
'퇴계의 천원' 지폐는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손꼽아 기다리던 설날이,
음식에 행복했던 명절이 언제였던가요.
되돌아보게 하는 퇴계 종가 차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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