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스포츠를 오랜 기간 취재하면서 느끼고 확신하는 것 중 하나는 선수들이 성공하려면 시대(운동 환경)와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비단 프로 스포츠만 그러한 건 아니겠지만.
야구, 축구 선수들은 대다수가 초등학교 3, 4학년 때 운동을 시작한다. 프로의 선택을 받을 정도면 고졸이라도 10년 이상 운동 경력을 갖는다. 밥 먹고 매일 반복하는 게 운동인데 과연 실력 차이가 얼마나 날까. 기술적인 면에서 한정해서다.
문제는 시대적인 배경이다. 운동을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선후배 관계, 팀 전력 등 환경적인 면이다. 심리적인 면이 기술 이상으로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기에 한마디로 마음이 편해야 가진 실력을 100% 발휘할 수 있다. 부담감을 가지면 경기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스포츠에 멘탈은 점점 강조되고 있다.
감독이나 코치를 잘 만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능력이 부족한 선수는 더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한다. 프로야구는 매주 6차례, 프로축구는 매주 1, 2차례 경기를 하는 데 주전 보장만 받으면 적응하기 마련이다.
감독의 남다른 관심과 사랑을 받은 선수가 중도에 낙오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출전 보장은 전적으로 감독의 책임이다. 감독이 온갖 비난을 받으면서도 붙박이로 내보내 기량을 꽃피운 선수를 여럿 봤는데, 그들은 운과 복을 타고났다. 일부에서는 구단주나 프런트 관계자가 선수 기용에 입김을 행사해 비난받기도 하지만 흔한 일은 아니다.
대스타 반열에 오르려면 부모 교육과 인성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어느 정도 스타 대접받는 선수가 부모의 지나친 간섭과 인성 때문에 대스타로 가지 못하는 경우도 꽤 있다. 도박 문제 등으로 어렵게 쌓은 성을 스스로 허문 선수들이다.
고졸 출신 프로야구 스타 구자욱(삼성 라이온즈)과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전 넥센·키움 히어로즈)은 곧잘 비교되는데, 시대적 팀 환경과 지도자가 두 선수의 운명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2015년 1군 무대에서 신인왕을 다툰 둘의 현재 상황을 먼저 보자.
구자욱의 2021년 연봉은 3억6천만원이다. 지난해 2억8천만원 보다 8천만원 올랐다. 1년 전 삼성의 연봉 삭감 방침에 마찰을 빚었던 점을 떠올리면 이번에는 조용히 협상이 끝난 셈이다.
김하성은 올해 초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와 보장받은 연봉만 4년간 2천800만달러(약 305억원)에 계약했다. 매년 700만달러(약 76억원)를 받는 사나이로 거듭났다. 그는 타석 수 등 플러스옵션을 충족하면 4년 동안 최대 3천200만달러(348억원)까지 받는다.
올해 연봉만으로 보면 김하성은 구자욱의 20배 이상을 받는다. 냉정하게 평가하더라도 두 선수의 몸값이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일까. 기량 차이도 그만큼일까. 메이저리그와 한국프로야구 시장의 흥행, 마케팅 차이일까. 구자욱은 삼성을 대표하는 타자이고 김하성은 아직 메이저리그에서 검증받지 않은 선수인데도 그렇다.
프로 데뷔 시점으로 돌아가 보자. 1993년생인 구자욱은 1995년생인 김하성과 2015년 나란히 1군에서 풀타임 활약하면서 신인왕 경쟁을 펼쳤다. 두 살 더 많은 구자욱은 입단 후 군 복무를 먼저 했다.
구자욱은 치열한 경쟁 속에 김하성을 따돌리고 신인왕을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하지만 2016년 구자욱의 연봉은 8천만원(전년 2천700만원), 김하성의 연봉은 1억6천만원(전년 4천만원)이다.
구자욱은 이때부터 다소 황당한 푸대접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2017~2020 시즌 구자욱의 연봉은 1억6천-2억5천-3억-2억8천만원, 김하성의 연봉은 2억2천-3억2천-3억2천-5억5천만원이다. 김하성이 꾸준히 구자욱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구자욱은 2019 시즌 부진으로 2020년 연봉을 삭감당했는데, 2015~2018 시즌에는 김하성보다 더 나은 활약을 하고도 연봉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2015~2018 시즌 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WAR)는 구자욱이 4.99-3.96-4.96-391이고, 김하성은 4.94-3.81-4.93-3.56이다.
구자욱은 좋지 않은 팀 환경 때문에 피해를 봤다. 2015년은 야구단을 보는 삼성그룹의 눈이 달라진 시점이다. 그해 삼성은 정규시즌에서 5연패(2011~2015년 우승)를 달성했으나 한국시리즈에선 5연패에 실패(2011~2014년 우승)했다. 삼성이 야구단 운영을 공격적으로 한 건 이때까지였다.
공교롭게도 삼성은 1982년 프로야구 원년부터 홈구장으로 삼았던 대구시민야구장을 떠나 2016년부터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 시대를 열었고 그룹 계열사의 지위를 잃고 제일기획의 자회사로 전락했다. 그룹의 외면 속에 최강 삼성을 꾸렸던 투타 핵심 선수들이 은퇴와 해외 진출, 자유계약선수(FA) 이적 등으로 줄줄이 빠져나갔다.
구자욱은 졸지에 데뷔 첫해부터 '포스터 이승엽' 소리를 듣고 삼성을 이끌 '소년가장'의 짐을 졌다. 중장거리 타자의 체격을 갖춘 그에게 구단과 팬들은 홈런왕 이승엽의 대를 이을 거포가 되길 바랐다. 이런 기대 부응을 위한 벌크업 과정에서 구자욱은 몸과 마음에 모두 상처를 입었다.
이럼에도, 삼성은 채찍질만 했지 그의 희생에 대한 보상과 격려는 외면했다. 프런트 사장과 단장부터 그룹에서 힘없는 인사가 자리 잡으면서 삼성은 공격적인 투자와는 거리가 먼 운영을 했다.
구자욱은 연봉 협상 과정에서 번번이 좌절감을 맛봤다. 구단은 잘할 때는 외면 하고 못 하면 이를 추궁해 연봉을 삭감했다. 구자욱이 신인왕에 올랐을 때도 삼성은 선수를 격려하고 팬서비스를 위한 기념품 하나 만들지 않았다.
삼성 코칭스태프도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 벌크업이 맞지 않음을 파악하고 부담감을 주지 않았다면 구자욱의 2019 시즌 부진은 없었을 것이다.
삼성이 배출한 대스타 이승엽을 소환해 보자. 이승엽은 1995년 왼손 투수로 주목받아 입단했기에 타자로 전향한 후에도 큰 부담감 없이 기량을 펼칠 수 있었다. 당시 주위에는 스타 대접을 받는 선배들이 포진해 있었다. 우승에 목마른 삼성그룹은 반도체와 무선통신을 앞세운 삼성전자의 대도약 속에 야구단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이승엽이 홈런 수를 늘릴 때마다 기를 살리는 일에 매진했다.
김하성은 히어로즈 시절 이승엽처럼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에서 기량을 꽃피웠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주변에는 쟁쟁한 선배 선수들이 있었고 걸출한 후배도 들어왔다.
김하성은 군 면제로 날개를 단 점도 이승엽과 같다. 김하성은 2018년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이승엽은 일찍이 신체검사에서 군 면제를 각각 받았다.
선수 마케팅에 치중한 히어로즈의 구단 운영 방침도 김하성의 성장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히어로즈는 김하성에게 연봉을 아끼지 않고 투자했고 그의 메이저리그 포스팅 비용(이적료)으로 552만5천달러(약 60억원)를 챙겼다.
앞으로 구자욱에게도 기회는 있다. 2023 시즌 종료 후 FA가 되는 시점이다. 남은 기간 꾸준한 활약을 보인다면 그는 팬들이 수긍하는 대접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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