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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노트] ‘범도민 이웃사랑 행복나눔 캠페인’ 유감

김도훈 경북부 기자
김도훈 경북부 기자

참 반가운 얘기였다. 지난 4일 주낙영 경주시장이 새해 첫 월급 전액을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했다는 것이었다. 주 시장의 기부를 시작으로 경주시 공무원도 자율적으로 모금운동을 벌인다고 했다.

그러나 반가움은 다음 날 깨져 버렸다. 이들의 자율적 모금이 사실은 '반강제적 모금'이란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사실은 이랬다. 경북도는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26일까지 '범도민 이웃사랑 행복나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공직자가 솔선해 지역사회 전반에 기부문화를 확산하겠다는 게 목표였다. 경주시장의 급여 기부와 직원들의 모금도 이 캠페인의 하나였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저소득 위기계층을 돕겠다는 취지는 좋았다. 그러나 그 방식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경주시 등에 따르면 경북도는 애초 ▷초기단계(경북도 공무원) ▷발전단계(시군 공무원) ▷확산단계(공공기관 사회단체) ▷정착단계(일반 도민) 등 단계별 확산 방안을 마련한 뒤 가장 먼저 도청 직원의 참여를 유도했다.

'개인별 자율 참여'라고 했지만 관련 계획서엔 ▷3급 이상 50만원 ▷4급 20만원 ▷5급 5만원 ▷6급 이하 2만원 식으로 기준금액을 정해놨다.

도지사는 1월 급여 전액을, 부지사는 200만원을 기부한다는 단서도 달았다. 참여대상과 예상모금액 등도 명시했다. 경주시가 최근 내부 전산망에 올린 계획서도 비슷했다. '자율적 참여'라면서도 직급별 기준액과 구체적인 참여인원 등을 명시했고, 심지어 부서별 기부자 명단을 담당 부서로 보내라는 내용까지 추가됐다.

이런 상황에서 부담을 느끼지 않을 직원이 몇이나 될까. 경주시 한 공무원은 "기부자 명단을 작성한다니 유쾌하지는 않다. 특히 하위직 입장에선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했다. 다른 직원은 "기준 금액까지 정해놓은 것은 사실상 갹출"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돈이 아깝다는 게 아니라 '자율적 참여' 방식에 대한 반감이었다. 차라리 기준금액을 정하지 않고 말 그대로 '자율'에 맡겼으면 어땠을까. 모금액이 예상치를 훨씬 밑돌았을까. 2년 전 경주에 와서 많은 공무원을 만났지만, 이웃을 위한 5만원(6급), 2만원(7급 이하)을 아까워 할만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

경북도 입장에선 "기준은 기준일 뿐, 강제성은 없었다"고 해명할 수도 있겠다. 산하 시군들 역시 "상급기관 요청에 따를 수밖에 없지 않냐"고 반문할 법도 하다.

그러나 경북도와 산하 23개 시군에서는 먼저 '성과를 위해 직원들에게 기부를 강요한 건 아닌지' 되짚어보길 바란다. 진정한 기부문화 확산을 바란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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