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애플카와 파이어족

김현덕 경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김현덕 경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김현덕 경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애플이 만들 것이라고 예상되는 자동차, 소위 애플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벌써 전기자동차 기업 테슬라의 주가가 갑자기 폭락하고, 애플카 수혜주로 지목되어 주가가 들썩인 기업도 있다. 지난해는 테슬라가 가장 주목받는 자동차 기업이었다면 금년은 확실히 애플이 뉴스의 중심이 된 것이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기업이 즐비한 자동차산업에서 정보통신(ICT) 기업이 이렇게 시장을 흔들어 놓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다시 한번, 애플과 테슬라가 탄생한 실리콘밸리의 저력에 감탄하면서 도대체 무엇이 이런 일들을 가능하게 하는지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리콘밸리는 엄청난 투자금과 첨단기술로 상징된다. 투자금을 받아 첨단기술과 좋은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은 모두 인재 확보로 귀결된다. 따라서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인재를 중심에 두는 기업 문화가 있고, 이것이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 이 점을 고려하여 우리의 현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자.

첫째, 실리콘밸리는 제도보다 사람을 믿는다. 실리콘밸리 기업의 개발책임자는 업무에 대해 사실상 무제한의 권한을 갖는다. 인재 채용, 조직 구성, 자금 사용 등에 대해 전권을 가지도록 지원하기에 개발책임자는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업무를 진행하고,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기업들은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고도 인재의 활동을 기존 관습이나 사규로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혁신은 원래 이질적인 기술과 문화가 만나야 성공하는데, 아무리 우수한 인재라도 기존 체제에 순응하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면 혁신이 발생하기 어렵다. 결국 사람을 믿지 못하고 제도로 관리하는 문화에 적응하느라 어렵게 유치한 우수한 인재는 진이 빠진다.

둘째, 실리콘밸리는 수많은 스타 개발자가 기업의 중심이 된다. 개발책임자는 개발에 성공하면 그 제품을 대표하는 스타 개발자가 돼 대중의 주목을 받는다. 실리콘밸리에는 유명한 기업만큼 더 많은 스타 개발자들이 존재한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은 파격적인 스톡옵션까지 제시하며 스타 개발자를 '모시기'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한다.

우리는 어떤가? 논문을 잘 써서 스타 과학자가 된 사람은 있어도 스타 개발자는 찾기 어렵다. 인재를 뺏기기 싫어 감추는 경우도 있겠지만 개발자에게 그만큼 합당한 대우를 해 주고 있는지 의문이다. 기업의 여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기존 기업은 물론이고 스타트업까지 지분에 따른 경영권 유지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결코 좋은 개발자를 모실 수 없다.

셋째, 실리콘밸리는 경쟁을 즐긴다. 지금은 애플과 테슬라만 주목받고 있지만, 5년 뒤, 10년 뒤, 이들과 견줄 좋은 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는 즐비하다. 왜 그럴까? 몇 년 전 발표된 미국 10대 ICT 기업 직원 평균 근속 조사 결과에 따르면 1위를 차지한 페이스북이 2년 조금 넘고, 꿈의 직장이라는 구글도 2년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실리콘밸리의 개발자들이 끊임없이 옮겨 다니면서 개별 기업의 역량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기 때문이다. 애플카를 주도하고 있는 인사들의 상당수는 테슬라에서 옮겨온 직원들이다. 1, 2년 걸리는 업무를 완료하면 더 좋은 조건으로 끊임없이 이직하면서 경쟁하는 실리콘밸리의 개발자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가 좀 더 도전적이야 한다.

요즘,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30, 40대에 조기 은퇴한다는 '파이어족'(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이라는 신조어가 국내에서도 유행하고 있다. 테슬라 주식을 산 소위 '서학개미'와 애플카 이슈에 올라탄 사람들 중에는 파이어족이 되기를 꿈꾼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실리콘밸리에도 개발자 출신 파이어족 성공 스토리가 종종 회자된다. 실리콘밸리의 파이어족은 꿈을 실현하는 사람이고, 주식 투자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이룬 성과를 쫓아가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늘 실리콘밸리의 종속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도 실리콘밸리 사람들처럼 꿈을 이뤄 파이어족이 된 사람이 더 많아지도록 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그것이 기업이 사는 길이고, 가까운 미래에 애플과 같은 국내 기업이 탄생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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