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몰고 온 전례 없는 경제 한파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IT, 플랫폼 기업, 은행 등에는 막대한 이득을 안겼다. 요즘 흔히 들을 수 있는 'K자 양극화' 현상이다. 정부여당은 이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이익공유제'를 들고 나왔으나 '주주권 침해' '반시장적 발상'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한바탕 논란이 크게 일었다.
지난해 주요 은행은 '이자 장사'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지난해 8개 금융지주사들의 이자수익 추정치는 전체 매출 51조 원의 80%인 41조 원에 이르는데 역대 최저 금리에도 코로나19 위기로 대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실직자와 자영업자, 중소기업의 생계형 대출에 '영끌'(영혼까지 빚을 끌어쓴다는 뜻)'로 집을 사고 '빚투(대출로 투자)'로 주식 투자 수요까지 급증하면서 지난해 은행 대출 규모는 1년 전에 비해 180조원이 늘었다.
은행이 대출 규모를 크게 늘릴 수 있었던데는 정부의 역할이 컸다. 정부가 서민들의 어려움을 돕기 위해 약 80%를 보증해주자 은행들은 평소에는 심사에서 통과하지 못할 대출을 내줬다. 예상되는 손실을 정부가 다 떠안아주면서 은행은 안정적으로 이자 수익을 챙길 수 있었다. 코로나 시대에 유동성이 부족해지자 카드 실적이 호조를 낸 것도 은행들이 이익을 내는데 한몫했다. 은행의 선진 금융 기법이 수익을 늘리는데 기여했을 것이나 서민들의 대출과 정부의 보증이 결정적으로 은행권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다 줬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은행들이 최근 통상 임금의 180~20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자 '이익 공유제'의 타깃이 은행을 향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은행이 대출금리를 낮추거나 불가피한 경우에는 임대료(운동)처럼 중단해야 한다"고 한 데 이어 "은행의 공적 기능을 확대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홍 정책위의장은 대출 원리금과 이자 상환 유예 조치도 연말까지 연장되길 기대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자 이낙연 당 대표는 "이자까지 정치권이 관여하는 것은 몹시 신중해야 한다"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여당 정책위의장의 발언은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이익공유제'에 은행이 동참하기를 촉구하는 의미이다. 이에 대해 야권에서 '이익공유제'가 주주권익을 침해하는 반시장적 발상으로 자본주의 이념에 맞지 않는다며 공세를 펼쳤다. 은행 이자에 대한 제한조치까지 거론하는 것은 '금융권 팔비틀기' '관치금융적인 사고'라는 반발도 뒤따랐다. 이에 여당은 '이익공유제'를 시행하더라도 기업들에 강제하지 않고 자발적 참여로 할 것이라고 정리했다. 은행권 내부에서는 회사 기준이 있는데 일방적으로 이자를 감면하거나 인하하라는 식의 압박은 옳지 않다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러한 논란은 각각 타당한 주장을 내세우고 있으나 은행이 사회적 기업으로서 공익적인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은행이 서민들이 어쩔수 없이 대출에 의존해 어려움을 타개해야 하는 상황에서 반사이익을 거뒀다면 서민들을 위한 혜택과 지원을 베풀어 사회적 기여에 나서는 것을 고려해봐야 한다. 더구나 지금이 코로나19 위기 라는 전대미문의 비상시국임을 헤아린다면 한가하게 이념적으로 옳고 그른지를 따질 게 아니라 판단을 달리 해야 한다.
은행은 민간 기업이면서 공익적 역할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표적인 정부 보호 업종으로 진입장벽이 높고 독과점 상태로 상당한 지위를 누려오기도 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방만한 운영과 부실한 대출로 휘청이다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 160조원이 투입돼 회생했다. 지난해 옵티머스와 라임 사태 처럼 펀드를 판매하면서 부실이 발생할 경우 피해자들 보다는 은행에 돈을 우선적으로 회수해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처럼 은행은 사회적 책임에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이번에는 은행이 서민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던 홍장표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가 한 일간지에 기고한 내용에 따르면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협력이익공유제'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때에도 추진되고 시행됐던 제도를 잇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명박 정부 때의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협력회사와 나누자는 것으로 제안 당시 지금처럼 논란이 일었으나 이후 상생협력법 개정으로 결실을 맺었다. 박근혜 정부 때는 한-중 자유무역협정으로 이득을 얻는 기업의 이익을 농어민의 피해 지원에 활용하는 무역이득공유제가 있었다. 이에 따라 2015년부터 1조원 목표로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조성에 들어갔으며 이념 논쟁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현재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협력이익공유제'는 이전 정부들의 제도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이전의 이익공유제가 공동으로 사업을 하거나 인과관계가 분명한 집단들에 해당한다면 지금의 이익공유제는 그러한 관계가 모호한 편이다. 코로나19 특수를 누린 집단은 네이버와 배달의민족과 같은 IT·플랫폼 기업, 은행 등 금융업종인데 반해 피해 집단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으로 별개의 집단이다. 소상공인 등 서민들의 대출 증가로 은행이 이득을 본 측면이 있지만, 인과관계가 별로 없으며 직접적인 원인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볼 수 있다.
이때문에 '이익공유제'라는 명칭을 쓰는 것이 맞지 않으며 괜한 오해와 논란을 불러 일으킨다는 지적도 있다. 다만, 공통점이 있다면 '자발적 참여'를 통해 정책 효과를 노린다는 것인데 전문가들은 이러한 제도적 설계가 한계를 안고 있어 성공하기 어렵다는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정부여당이 자발적 참여를 통해 이익공유제를 시행하는 것이 서민들에게 뭔가 한다는 생색은 내면서 슬쩍 발을 빼는 '이중적 행태'라는 비판도 받는다. 소상공인과 서민 등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들도 구체적인 혜택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아 반응이 미지근한 편이다.
저간의 사정을 살펴보더라도 '협력이익공유제'를 기업에 강제하기는 어렵다. 제도를 시행한다면 현실적 한계 속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여권은 이익공유제로 세 가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사회연대기금 조성과 플랫폼 기업이 입점업체의 수수료를 인하해주는 파트너 모델, 그리고 전통적 의미의 기업 간 협력이익 공유제다.
사회연대기금 조성은 기업의 자발적인 기부와 정부의 운용기금 중 여유자금을 활용해 상생기금을 조성하는 방식이다. 이 기금으로 특별재난 구호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저금리 금융 및 임대료 지원, 의료진 지원 등에 사용토록 한다는 것이다. 수수료 인하는 플랫폼 기업에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네이버는 이미 지난해 4월부터 올 1분기까지 결제 시스템인 '스마트주문'을 이용하는 소상공인에게 결제 수수료 전액을 지원하고 있다. 네이버는 또 미용실 등 뷰티 업종 매장에서 쓰이는 '네이버페이' 결제 수수료 전액도 지원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에서 비롯된 '이익공유제' 논란은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건강한 논쟁이라 할 수 있다. 플랫폼 기업 일부가 이미 참여하고 있으며 은행 등 금융권에서도 소상공인과 서민 지원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야 할 때다. 대기업들도 협력업체들의 고충을 더 헤아리는 아량이 필요하다. IMF 외환 위기와 세계 금융 위기를 능가하는 비상 상황에서 호황을 누리는 집단은 포용적 관점에서 한숨과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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