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재목의 새론새평]설날, 차례보다 덕담 한마디 더 가다듬자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코로나19가 지속되는 가운데 어김없이 음력 설 명절이 찾아왔다. 설은 추석과 더불어 대한민국 대표 공식 명절이다. 산 자들끼리 모처럼 함께 자리하며, 쉬고 즐길 수 있는 휴일이다. 전염병으로 마음 놓고 사람을 만날 수 없어 유감이나 명절을 맞으니 이런저런 생각거리도 많다.

명절(名節)을 사전에서는 '전통적으로 해마다 지켜 즐기는 날, 아주 좋은 시절' 정도로 규정한다. 습관적으로 명절이라 하면 누구나 '아주 좋은 날'로 인식하나 이상하게도 '명+절' 두 자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명쾌하지 않다. 우리는 명절을 아주 좋은 날, 철(시절, 절기)로 보고 가절(佳節), 명일(名日), 가일(佳日)로도 쓰는데, 중국・일본에서는 명절이라 적으면 '명예와 절조'로 읽는다. 실제 명절에 해당하는 중국말은 절일(節日)이고 일본말은 축일(祝日)이다.

'명'은 '이름나다, 훌륭하다, 좋다'는 뜻이고, '절'은 1년을 스물넷으로 나눈 철=절기(節氣)를 말한다. 절기는 절후(節候)이다. '기'든 '후'든 '철, 때'(=시절, 시기)를 가리킨다. 자연 사물의 이치(物理) 그대로 삶의 이치(道理)라 여겨온 동양의 전통 시대에는 자연이 법(法)이었다. 사람들은 태양의 위치에 따른 빛의 많고 적음 즉 온도의 변화에 기대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달을 보고 날짜를 분별했다. 이렇게 해와 달이 변화하는 규칙을 알아내 패턴화한 것이 24절기와 달력(月曆)이다. 해나 달의 빛에 기대어 생활을 이어왔던 버릇 때문에, 문명의 첨단을 달리는 지금도 우리는 빛살과 맺었던 따스한 옛 사랑의 그림자를 그리워한다. 인간의 내면에 박힌 빛살의 무늬, 그런 생명력을 '덕'(德)이라 한다. 그래서 빛을 따라 탄생한 명절에 우리가 집착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빛의 생명력을 느낄 덕담(德談)에 기대는 마음도 그렇다. 미안하게도 지금은 덕담도, 덕담해 줄 사람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 지옥 같다. "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 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라고 정호승 시인이 '밥값'이란 시에서 말한 지옥 같은 현실 말이다.

지금의 흔해 빠진 덕담이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세요'다. 양력 새해 축하 인사를 이미 실컷 주고받았는데, 다시 음력 새해의 인사를 주고받아야 한다. 솔직히 번거롭고 불편하다. 문자로 쏟아지는 '복 많이… 건강' 운운의 말들이 좀 지긋지긋하다. 하나 마나 한 소리를 온 국민이 반복하고 있다니. 이럴 바엔 주식, 펀드에 열광하고 있는 국민에게 '주식, 펀드 대박 나기를 빕니다!'라든가, 집에만 처박혀 사는 요즘 '무조건 걸으세요'라는 편이 훨씬 알맹이 있는 인사이리라.

또 왜 하필 복, 건강인가. 이것은 전통적인 '수복강녕'(壽福康寧)의 관용구에서 나온 말투이다. 수복강녕이란 '오래 살고'(수) '복을 누리며'(복) '건강하고'(강) '평안하다'(녕)는 뜻이다. 최근 중국발 '사상 최대 3천억 뇌물 수수범 사형'이란 기사나 과거 우리 사회에 유행한 '9988234'(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 3일 만에 죽는 것)라는 문구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인간은 누구나 살아 있는 동안 제 욕망을 끝없이 실현하고 싶어 한다. 뭐 특별한 일도 아니고 욕망에 찌든 이 풍진세상의 흔한 풍경일 뿐이다. 우리의 덕담이란 게 겨우 이것인가. 제발 수복강녕 같은 기복과 소유의 덕담에서 서로의 삶을 전망하는 가치의 덕담으로 넘어서면 좋겠다.

가치란 삶의 의미를 묻는 일이다. 설날 명절엔 무엇보다도 '새해의 첫날'이라는 의미를 살려야 한다. 삶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한 해의 첫걸음을 생각해 보는 것 말이다. 초심의 '초'(初)란 옷을 만들려고 천이나 가죽에 칼질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새해 첫날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일이 차례보다 더 소중하다. 살아 있는 내 생각의 방식이 차례나 제사의 본질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음식 차림의 형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나' 아닌가. 가령 멕시코의 '사자(死者)의 날'처럼 일정 기간을 정해 돌아가신 사람들을 한꺼번에 추념하는 축제도 그들이 결정한 하나의 형식이다. 그것마저도 싫으면 안 하면 그뿐이다. 모든 형식은 은유이고 상징이다. 설 명절엔 차례 음식 차리기보다 마음속 덕담 한마디 더 가다듬는 편이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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