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 좀 빼야지, 결혼은 언제?"…'명절 잔소리'가 사라졌다

명절마다 '잔소리' 스트레스지만…올해는 잔소리 피해갈 수 있어
덕담 주고받는 자리마저 사라져 아쉽다는 목소리도

코로나19 이전 명절이면 인터넷 커뮤니티에
코로나19 이전 명절이면 인터넷 커뮤니티에 '명절 잔소리 메뉴판'이 올라오곤 했지만 올해는 방역지첨 덕분에 명절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분위기다.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대구 수성구 만촌동에 사는 황모(49) 씨는 이번 설에는 스트레스를 받을 걱정이 덜하다. 그는 "올해는 가족끼리 설을 쇠기로 했다"며 "자녀들이 잔소리를 들을까봐 친척댁에 가기 싫어해 어렵사리 데려가곤 했는데 올해는 걱정이 없다"고 했다.

방역당국 지침으로 이번 설에 친척 간 모임을 갖기 어려워지면서 명절 스트레스는 오히려 줄어드는 분위기다. 특히 덕담을 가장한 잔소리를 피해갈 수 있어 속편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1천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39.1%가 명절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미혼 응답자의 경우 '어른들의 잔소리'를 스트레스의 원인 1위(약 57%)로 꼽았다.

때문에 설이나 추석이 되면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명절 잔소리 메뉴판'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는 명절에 흔히 나오는 잔소리마다 비용을 매겨둔 메뉴판이다. "대학 어디어디 지원할거니?"는 5만원, "살 좀 빼야 인물이 살겠다"는 충고는 10만원짜리다.

하지만 이번 설에는 명절 스트레스에 몸서리 치는 이들이 줄고 있다. 코로나19로 지난 추석에 이어 일가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상황 탓이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나모(31) 씨는"친척 댁에 가기 전에 예상 질문을 생각해둘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일부러 친척 댁에 가지 않으려고 핑계를 궁리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올해는 모이지 않아도 되는 명분이 생겨서 속이 편하다"고 했다.

대구 서구 평리동에 사는 이모(39) 씨는 "코로나19 탓에 친척들 간 분위기가 대체로 우울하다. 꼬치꼬치 안부를 묻기보다는 건강이나 잘 챙기자며 서로 조심스러워 한다"라며 "만나서 얘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짧게 통화만 하고 있다"고 했다.

이전에는 진학·취업·육아 등이 대화 주제로 올랐던 것과 달리 잔소리의 종류가 달라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코로나19로 '명절에 오느냐, 마느냐'로 실랑이하는 상황이 되레 스트레스가 됐다는 것이다.

대구 수성구 지산동에 사는 박모(42) 씨는 "시댁 어른들까지 합치면 8명이 한자리에 모여 명절 전부터 이번 설에 방문하냐, 왜 못 오냐로 시댁과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며 "결국은 못 이기는 척 찾아뵙기로 했지만 명절 당일에 받던 스트레스를 미리 받은 셈이 됐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덕담을 주고받는 자리마저 사라져 아쉽다는 목소리도 있다. 대학원생 김모(27) 씨는 "설에는 큰집, 작은집이 모여 세배를 드린 뒤 '올 한해 건강히 지내자'라는 덕담을 서로 주고 받았다"며 "친지들끼리 자주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1년에 한번 얼굴을 보고 인사를 나누는 기회마저 없어진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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