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동을 걷다,먹다] 20. 안동 간고등어 이야기

안동신시장 입구에 자리잡은 수많은 간고등어 매장의 모습
안동신시장 입구에 자리잡은 수많은 간고등어 매장의 모습

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음식을 먹는다.

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

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 먹게 됐다. 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

20번째 이야기 '안동 간고등어'

공대를 나온 농부가수 '루시드폴'이 부른 고등어 라는 노래를 들으면 푸른 바다를 가르며 시원하게 헤엄치는 고등어의 푸른 등이 눈앞에 보이는 듯 선했다. "서울의 꽃등심보다 맛도 없고 비린지는 몰라도 그래도 나는 안다네. 그동안 내가 지켜 온 수많은 가족들의 저녁 밥상.."이라는 가사를 듣는 순간, 어머니가 차려낸 온 가족의 밥상 한가운데 자리잡은 잘 구워진 고등어 한 마리가 눈 앞에 나타났다.

제주 고등어는 가수 김창완이 부른 '어머니와 고등어'와는 다른 고등어였다. 고등어는 엄마가 해주시던 집밥을 생각나게 한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어머니 코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주려 하셨나보다.

소금에 절여 놓고 편안하게 주무시는구나. 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구일 먹을 수 있네..."

루시드폴의 '고등어'와 김창완의 '고등어'는 조금 다르긴 하다. 김창완 노래 '어머니와 고등어' 에 등장하는 고등어는 소금에 절인 '간고등어'였다. 아마도 생물고등어를 사서 소금에 절여서 냉장고에 넣어둔 모양이다. 간고등어를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고등어의 배를 갈라 내장을 다 빼낸 후 소금을 적당히 쳐서 염장을 하면 끝이다. 소금을 친 고등어를 안동에서는 간잽이라고 하고, 소금을 쳐서 간고등어를 만드는 사람도 '간잽이'라고 한다.

간고등어는 어디에서나 만들 수 있지만 안동간고등어 특유의 맛을 내지 못한다.
간고등어는 어디에서나 만들 수 있지만 안동간고등어 특유의 맛을 내지 못한다.

우리는 신선한 '생물'고등어보다는 소금에 절인 '간'고등어에 더 익숙하다. 고등어는 성질이 급해서(?) 잡히는 즉시 죽는다. 바다생선이지만 부패가 빨리 진행돼서 생선회로는 적합하지 않다. 다만 주산지인 제주도에서는 어느 정도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어서 고등어회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더러 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실린 고등어는 "길이가 두 자 가량이며 몸이 둥글다. 비늘은 매우 잘고 등에는 푸른 무늬가 있다. 맛은 달고 시고 탁하다. 국을 끓이거나 젓을 담글 수는 있어도 회나 어포는 할 수 없다."고 기술돼있다. 조선시대에도 고등어는 쉽게 잡혀서 즐겨먹던 '백성생선'이었던 모양이다.

가난한(?) 대학생 시절, 학교 앞 학사주점에서 학생들이 즐겨 찾던 안주 역시 '고갈비'라는 이름의 고등어구이였다. 고등어기름이 흐르는, 연탄불에 노릇노릇 잘 구워진 고등어구이는 '고갈비'라는 이름으로 변신해서 막걸리 몇 통을 거뜬하게 해치웠던 시절도 있었다.

간고등어 숯불구이. 간고등어는 숯불에 구우면 가장 맛있다. (출처: KBS 한국인의 밥상 캡처)
간고등어 숯불구이. 간고등어는 숯불에 구우면 가장 맛있다. (출처: KBS 한국인의 밥상 캡처)

그런 국민생선 고등어가 2016년 환경부의 미세먼지 주범으로 오해할만한 발표로 인해 난리가 난 적도 있다. 환경부 발표이후 고등어는 시장에서 외면받았고 소비자가격도 크게 떨어졌다. 당시 환경부 발표는 주방에서 요리할 때 미세먼지의 주범인 PM2.5가 많이 발생하는데 특히 고등어 구울 때 가장 많았고 삼겹살과 계란 프라이 그리고 볶음밥 순이었다. 조리할 때 주방환풍기를 꼭 사용하고 요리후 창문을 열어 환기하라"는 내용이었다.

환경부가 2주 후 "고등어가 대기중 미세먼지 주범이라는 것은 오해입니다"라며 해명에 나섰지만 미세먼지의 주범이 된 고등어에 대한 명예훼손은 보상받을 길이 없었다.

고등어의 변신, 안동간고등어의 탄생

안동은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중의 내륙이다. 가장 가까운 동해의 영덕까지는 100km 정도로 고속도로가 뚫리지 않았던 예전에는 하루 이상 걸렸다. 지금과 같은 넓은 고속도로와 차량초자 없던 조선시대에는, 고등어같은 동해바다에서 잡힌 생선은 달구지나 등짐에 실려 내륙 깊숙한 안동까지 운반되곤 했다.

요즘 시장에서 팔리는 안동간고등어는 대부분 부산공동어시장에서 경락된 제주산 고등어를 가공한 것이다.

동해에서 잡힌 고등어는 주로 영덕 강구항에서 영덕 황장재나 청송 가랫재 두 고개를 통해 안동으로 넘어 오는데, 고불고불 험준한 산길이 무려 300여리에 이른다. 소달구지를 타고 오거나 등짐을 지더라도 최소한 하루 이틀 정도가 걸렸다. 고등어가 상하기 딱 좋은 시간이다.

그 때 서해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은 서해에서 부산까지 와서 다시 낙동강을 거슬러 오르는 '소금배'에 실려 안동 개목나루까지 올라왔다. 싱싱한 고등어는 하루가 지나면 상하기 시작한다. 염장작업을 하지 않으면 고등어는 상해서 더 이상 소용이 없어진다. 안동에 넘어오는 즉시 소금에 절여야 했는데 그것이 오늘날 안동간고등어 탄생의 시초다.

그렇게 수백 년, 안동에서는 고등어를 '간고등어'로만 알고 먹었다. 안동장은 물론 인근 청송 진보장에도, 예천장에도, 의성장에도 안동에서 염장한 간고등어가 어물전에 올랐다. 그때부터 고등어는 무조건 '안동간고등어'가 됐다. 고등어가 안동에 오면 간고등어, 즉 '간고디'로 변신하는 것이다. 짜지만 적당이 짠맛이 나서 짜지 않은 듯한 짠맛, 그것이 '짭쪼름한' 안동간고등어의 특징이었다.

간고등어 운반모습 재현. 안동시 제공
간고등어 운반모습 재현. 안동시 제공

요즘 안동에 들어오는 고등어는 대부분 부산 어시장에서 경락받은 제주산 고등어다. 노르웨이산 냉동 고등어에 비해 제주산 고등어는 때깔도 맛도 다르다. 노르웨이산이 심심하다면 국내산은 씨알이 굵은데다 고소하고 감칠 맛이 강하다.

시장에서 늘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해서 말이 '국민생선'이었지 천덕꾸러기 신세처럼 여겨지던 안동간고등어의 변신은 IMF사태가 계기였다. 시장상인들이 가내공업수준으로 소규모로 염장을 해서 그 때 그때 판매하던 간고등어를 위생적으로 공장에서 짜지 않게 염장을 하는 방식을 개발, 대량생산하는 한편, 브랜드를 도입한 것이다.

그때까지는 조선시대로부터 내려오던 굵은 왕소금으로 염장하던 방식에서 전혀 바뀌지 않았다. 굵은 소금으로 염장한 고등어는 시간이 갈수록 짠 맛이 강해졌다. 그래서 간이 세지 않도록 소금물에 담궈 염장하는 저염식 얼간 염장방식으로 바꿨고 염장기술자인 '간잽이' 고 이동삼씨를 모델로 내세워 간고등어의 브랜드화를 시도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위생적으로 잘 포장된 간고등어는 백화점과 홈쇼핑으로 진출했고 해외로도 수출됐다.

안동간고등어가 전국적 인지도를 얻었고 그 이후 간고등어 가공산업은 안동의 주요산업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안동간고등어가 전국적 인지도를 얻었고 그 이후 간고등어 가공산업은 안동의 주요산업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안동간고등어가 전국적 인지도를 얻었고 그 이후 간고등어 가공산업은 안동의 주요산업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브랜드화한 안동간고등어 가공공장은 10여 개에 이르고 안동신시장에는 간고등어를 전문적으로 가공해서 파는 가게만 수십여 곳에 이른다.

안동사람의 간고등어 사랑은 타지방의 추종을 불허한다. 늘 냉장고에는 간고등어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한두 손 정도는 쟁여둔다. 김창완의 '어머니와 고등어'라는 노래처럼 냉장고에 다른 반찬은 없어도 간고등어는 떨어지지 않았다.

안동에서는 매년 가을 '안동간고등어축제'가 열린다. 동해안에서 소달구지에 실어 고등어를 운반하는 풍경과 고등어를 염장하는 모습 등을 재현하는 등 안동시내가 온통 고등어굽는 냄새로 뒤덮힌 장관을 연출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코로나사태는 이 모든 축제를 중단시키고 있다.

설연휴를 앞둔 11일 안동신시장에 나갔다. 5인이하 집합금지라는 코로나 거리두기 행정명령에도 불구하고 차례를 지내지 않을 수 없어 제수용품을 장만하려는 집집마다 장을 보러나온 탓에 신시장 중앙거리는 인산인해였다. 그 중에서도 간고등어와 문어 및 상어돔배기 등을 파는 어물전이 가장 북적거렸다.

눈에 띄는 꼬지가 간고등어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꼬지로 꿰어놓은 '간고등어꼬지'였다. 집집마다 제사풍습이 달라 한마디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간고등어 한 마리를 구워서 차례상에 올리기도 하고 간고등어를 소고기와 돔배기처럼 꼬지로 만들어 상에 올리는 집도 꽤 있기 때문이었다.

안동의 명문가 중의 하나인 의성 김씨 '학봉 김성일'의 종가집 제수품목에도 고등어는 당당히 올라있었다.

사진: 안동에서 볼 수 있는 간고등어 꼬지. 차례상에 올라간다.
사진: 안동에서 볼 수 있는 간고등어 꼬지. 차례상에 올라간다.

간고등어는 다양하게 요리를 해서 먹는다. 적당히 간이 되어있기 때문에 따로 소금을 뿌리거나 간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다. 구워먹을 때는 이름난 고등어구이집에서 요리하듯이 숯불에 노릇노릇하게 구으면 가장 맛이 좋다. 학사주점에서처럼 연탄불에 구워도 좋다. 고등어조림을 하거나 찜을 해서 먹기도 한다.

서명수 슈퍼차이나 대표
서명수 슈퍼차이나 대표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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