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의료산업, 생존 방안은?…"바이오 기업·인재, 첨복 중심 재편"

"메이저 업체 없다"…입주기업 83곳 중 63곳 '10인 미만'
인천 송도·충북 오송 증 대기업·국책기관 유치로
탄탄한 의료 생태계 조성

대구첨단의료복합단지 내 신약센터. 대구첨복재단 제공

국내 '제3' 첨단의료복합단지(이하 첨복) 유치 움직임과 지자체별 바이오클러스터 난립으로 대구 의료산업의 미래가 '백척간두'에 놓였다는 우려가 많다.

전문가들은 대구 의료산업이 불리한 입지를 극복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은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이하 대구첨복재단)을 중심으로 인재를 키우고 창업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부 지원 확대를 통해 첨복재단 안정화를 꾀하는 것이 선결 과제라는 진단도 나왔다.

◆불리한 입지, 대기업 없는 대구첨복

2009년 대구가 오송과 함께 첨복단지(대구 동구 신서혁신도시 내 105만㎡)를 유치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지역 의료 산업 생산액 및 고용규모는 17개 시·도 중 10위권에 머물고 있다. 양적 성장이 기대에 못 미친 원인으로는 입지환경 탓에 기존 대기업을 끌어오지 못한 것이 첫손에 꼽힌다.

인천 송도는 인천공항에 인접한 물류환경과 경제자유구역을 중심으로 한 의학, 생명공학, 화학산업 인프라가 집적되며 대기업 유치에 잇따라 성공했다.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능력 세계 1위로 꼽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등 핵심 기업을 품으며 '세계 1위 바이오 클러스터'라는 야심찬 청사진까지 내놓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송도 4공장 설립에 1조7천400억원의 투자를 단행, 2023년쯤 1천800개의 일자리를 만들 예정이다. 셀트리온 역시 대규모 연구센터와 3공장 건립에 5천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으로 3천개의 일자리 창출을 얘기하고 있다.

1997년 국가산업단지로 출발해 2003년 문을 연 오송생명과학단지 역시 식약처, 질병관리청 등 6대 국책기관 중심으로 바이오업체와 시너지를 창출하며 70여개 기업이 입지하고 있다. 수도권과 가까운 입지와 20여년 전부터 조성된 인프라로 중견 이상 규모의 상장 제약사 공장 등 바이오기업 다수가 둥지를 틀었다.

특히 대구와 같은 시기에 자리잡은 오송첨복단지에는 132개 연구지원시설이 입주해 있고 2019년 부분 준공한 오송제2생명과학단지에도 85개 기업이 들어섰다. 바이오기업 생태계가 탄탄하게 조성되면서 국가산단인 오송3생명과학단지도 2030년 준공 예정이다.

반면 대구첨복에는 83개 기업이 입주해 있지만, 이 중 63개 기업은 고용이 10인 미만이다. '메이저 업체'를 찾기 어렵고 소수의 제약사마저 연구소만 두는 정도라 고용창출 효과도 크지 않다. 소규모 배후산단 논의가 있지만 오송 같은 대규모 바이오 산업단지는 생각하기 어렵다.

2012년 '셀트리온 대구공장' 유치설이 있었으나 무산된 아픔이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당시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1천억~2천억원을 투자해 복제의약품, 혹은 첨단기술을 적용한 기능성 바이오 화장품 공장을 대구에 두는 것을 검토했고 구체적 논의도 오갔으나, 셀트리온 경영이 일시적으로 악화되며 논의가 중단됐다. 이후 청주(오창)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면서 대구는 없던 얘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는 수도권과 거리가 먼 대구의 입지적 단점이 작용했다는 게 중론이다. 대구의 한 신약개발 스타트업 관계자는 "창업 초기에 대기업 수준 처우로 채용공고를 내도 단 한명도 지원을 안 해 어려움이 컸다"며 "의료산업은 인재가 핵심인데 수도권 선호현상이 극심해 기존 회사가 넘어오기는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지역 바이오 인재 창업이 살 길

결국 대구는 첨복과 지역 대학 등이 확보한 지역 인재의 창업을 촉진하고 성공사례를 만드는 전략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역에 의과대학 및 약학대학 다수가 포진해 교수 등 창업에 나설만한 역량을 갖춘 인재가 적지 않고 특히 첨복재단은 입주기업의 제품개발 연구, 시제품제작, 인허가, 마케팅까지 지원하기 때문에 스타트업이나 창업 초기기업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재원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 대구에는 이렇다 할 민간 기업이 없어서 인재가 모이기 어렵다. 우선 첨복이 갖춘 우수한 인력들과 고급 장비들을 살려 바이오산업 인재 '풀'부터 형성해야 한다. 대구는 의대나 약대가 많다는 확실한 장점도 있다. 첨복을 중심으로 형성된 인력풀이 향후 기업으로까지 연결되면 대구에도 바이오 산업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역 한 바이오기업 관계자는 "지역 출신으로 국내 대기업이나 외국 유명 제약사에서 근무하다 지역으로 돌아오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첨복단지 일대 정주여건을 개선한다면 일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고 했다.

정부의 첨복단지 기본계획 수립에 참여했던 이상원 성균관대 약학대학 교수는 "대구에 기업이 자리잡게 하려면 첨복단지 경쟁력 강화는 물론이고 기업이 지방의 불리함을 무릅쓸 정도의 인센티브가 확보돼야 한다. 이는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했다.

대구첨단의료복합단지 내 신약센터. 대구첨복재단 제공

◆첨복재단이 열쇠, 운영여건 개선해야

이처럼 지역 창업을 촉진할 성공사례를 만들려면 정부가 대구첨복재단 운영 여건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일례로 첨복재단의 연구원 처우 문제 및 이직 현상은 설립 초기부터 지적돼 왔으나 크게 개선되지는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연구를 이끌어 나갈 주요 책임급 연구원 이탈 현상이 한동안 이어지며 기관의 역량이 쌓이는 데 방해가 됐다는 평가가 내외부에서 나온다.

현재 첨복재단 직급별 평균 근속연수는 수석급이 8.8년, 책임급이 7.3년, 선임급이 4.8년, 원급이 2.9년이다. 5년간 216명의 신규직원을 채용했으나 지난해에만 15명의 연구원이 퇴사했다. 지난해 퇴사자 중 7명은 신약개발지원센터에서 나왔다. 대구첨복재단 관계자는 "2014년부터 본격적인 채용이 이뤄져 근속연수가 짧아 보이는 부분이 크고, 전체 인원에 비하면 퇴사자가 많다고는 볼 수 없다"면서도 "요즘 신약 및 의료기기 관련 연구원 몸값이 치솟고 있고 창업도 많아 퇴사 원인이 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첨복재단을 떠나온 사람들도 재단의 연구원 처우개선 필요성을 강조한다. 수년 전 첨복재단을 퇴사한 핵심 연구원 A씨는 "대구첨복이 초창기 '인재유치'는 잘 됐지만 더 중요한 '인재유지'가 잘 안 된 측면이 있다. 현재는 나아진 걸로 알고 있지만 재단 초기에는 책임 및 수석연구원 확보가 어렵자 이들 연봉을 올리면서 말단 연구원 연봉은 3천만원대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연구원들이 신이 나서 일할 수 있는 조직이 되면 자연스럽게 인재가 쌓인다. 연구 성과에 대한 인센티브도 보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첨복에 대한 전폭적 지원이 절실하지만 정부의 첨단의료복합단지 제4차 종합계획에 따른 대구첨복 지원 예산은 2022년 271억원, 2023년 267억원, 2024년 252억원으로 내년부터 해마다 줄어들 예정이다. 첨복재단은 재단 사업을 통한 수입을 증가시켜 재원을 확보한다는 방침이지만 첨복재단이 벌써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것은 무리라는 우려가 앞선다.

대구시 관계자는 "바이오산업이 지역별로 파편화 돼 집적을 통한 시너지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당초 첨복단지 설립취지를 살리려면 재정이 열악한 지방정부나 첨복재단보다 정부가 나서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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