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멋대로 그림읽기]김진영 작 '화몽유영-21묘妙하다

동양적 표현기법 바탕, 유려한 선과 여백 표현

김진영 작 '화몽유영-21묘妙하다014' 45.5x53cm 캔버스에 오일 (2020년)

추상표현주의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의 책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에 나오는 회화론에 따르면, 색이 지닌 힘은 심리적인 효과에 달려 있다.

색은 그것을 오래 볼 수 있도록 적절하게 사용되어야 하고 이를 통해 영혼의 내적인 음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결과로 우리는 색이 갖는 심리적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회화는 색채와 더불어 형태를 필요로 한다. 색채와 형태가 조화롭게 구성됐을 때 회화는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색이 지닌 불명확함 속에 명확함을 이끌어내야 하고 그것을 형태와 조화시켜 내적인 감정을 바깥으로 치환해야 비로소 회화로서 자리를 얻을 수 있다.

김진영 작 '화몽유영-21묘妙하다014'는 얼핏 보면 깊은 바다 속 물결 따라 흔들리는 해초 같거나, 북극권 지역에서 피어나는 오로라를 닮았다. 하지만 제목이 '화몽유영'(花夢遊泳) 즉 '꽃이 꿈꾸는 바, 삶의 자유로움을 즐기다'는 뜻을 가졌으니 화면 속 모델은 꽃임을 짐작케 한다. 김진영은 언젠가 읽은 한시의 시구에 영감을 받아 이 사자성어를 만들어 작업의 궁극적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올 초 작가의 개인전에서 김진영을 만나 '무엇을 그렸나'고 물었을 때도 그녀는 '칼라'(Calla) 꽃을 오브제로 삼았다고 했으니 꽃이 틀림없다.

화면으로 돌아가 보자. 세 줄기 꽃대에서 가운데 꽃대는 꽃의 봉오리를 잉태하듯이 차가운 청색 계열의 꽃대가 노란 색과 한 줄기 흰색으로 드러나 있다. 개화를 앞둔 시기이다.

칼라꽃의 꽃말은 '열정'과 '청정'이다. 색이 주는 심리적 효과를 잣대로 보면 청록 계열은 '청정'을 노랑과 흰 부분은 '열정'을 상징한다. 또 줄기를 표현함에 있어서도 한 선 두 선 여러 선들이 중첩되어 입체감과 공간감도 품고 있을 뿐 아니라 조형요소인 꽃대의 선도 단순한 꽃잎의 선이라기보다 인체의 아름다운 선에 대한 기억을 소환한다.

예부터 꽃은 여인에 비유됐다. 김진영의 이 작품은 아름다움과 에로티시즘이 절묘하게 융합된 성(性) 에너지의 표출로 볼 수도 있다. 한편 성 에너지를 생명의 본질로 치환한다면, 김진영은 생명의 고귀함을 줄기차게 꽃으로 차용해 작품에 녹여내고 있는 셈이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동양적 표현기법과 사상을 근간으로 해서 유려한 선의 표현과 여백(화면의 검은 부분)이 갖는 무궁한 심연의 공간감을 그려내고 있지만 그 또한 우연히 얻은 화면이 아니라 모두 의도된 화법이다.

작가의 이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점은 회화가 보는 이에게 가치 있는 정서적 공감을 안겨주는 까닭은 자연의 형태를 빌어 인간의 정취와 영혼의 상태를 표현하기 있기 때문이라는 작은 깨달음이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으니 보고 또 보고 싶다. 아! 화몽유영.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