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거꾸로읽는스포츠] 기계가 대신하는 심판 어디까지 잠식하나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카메라 선심에 긍정적
심판 판정 대체하는 기계 늘어날 전망

호주오픈 테니스대회에 등장한 카메라 선심이 공을 추적하고 있다. 그동안 코트 곳곳에 배치된 선심이 맡았던
호주오픈 테니스대회에 등장한 카메라 선심이 공을 추적하고 있다. 그동안 코트 곳곳에 배치된 선심이 맡았던 '아웃', '폴트' 등 콜을 기계가 미리 녹음한 사람 목소리로 대신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김교성 디지털 논설위원
김교성 디지털 논설위원

요즘 스포츠 마니아의 눈과 귀는 4대 메이저 테니스대회의 하나인 호주오픈에 쏠려 있다.

스포츠계도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복싱 등 단일 특설 이벤트를 제외하고 단일 대회 상금만으로 치면 테니스 4대 메이저대회와 미국남자프로골프(PGA) 메이저대회가 단연 최고로 꼽힌다. 호주오픈 남녀 단식 우승 상금은 275만호주달러(약 23억5천만원)다. 코로나19 영향을 덜 받은 지난해 호주오픈 단식 우승 상금은 약 33억원이었다. 스포츠 강국인 우리나라 선수가 언제쯤 테니스 메이저 무대를 정복할 수 있을까.

지난 8일 호주오픈이 개막하면서 카메라 선심이 등장, 주목받고 있다. 코트에 설치된 카메라가 공의 궤적을 추적해 실시간으로 판정을 하고 있다. 그동안 코트 곳곳에 배치된 선심이 맡았던 '아웃', '폴트' 콜을 기계가 미리 녹음한 사람 목소리로 대신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 속에 지난해 9월 US오픈에서도 부분적으로 선심을 대신해 전자판독으로 판정한 적이 있다.

카메라 선심에 대한 호주오픈 참가 선수들의 의견은 나눠진다. 카메라 판정이 선심보다 더 공정하다며 선심이 필요 없다는 주장이 대세다. 선수들은 챌린지를 요청하는 부담에서 벗어나 좋다는 반응이다.

이 덕분인지 호주오픈에서는 심판 판정에 불복하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 일부 개성 넘치는 선수들의 거센 항의도 이전보다 많이 줄었다.

반면 일부 선수들은 테니스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사람이 하는 본연의 기능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테니스 전통이 사라지는 데 대해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는 비단 테니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거의 모든 스포츠가 카메라 판독을 앞세운 기계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미 야구, 축구, 배구, 농구, 골프 등 인기 프로 스포츠는 카메라 판독에 익숙해져 있다.

프로야구는 세이프-아웃과 홈런성 타구 판정 등 일부 한정해 비디오 판독을 하고 있지만, 항목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야구 경기의 핵심 요소인 스트라이크-볼 판정도 머지않아 기계가 대신할 전망이다. 녹음된 사람 목소리나 기계음으로 울리는 스트라이크-볼 판정은 선수들의 경기력과 팬들의 관람에 엄청난 변화를 줄 것이다.

프로축구 중계에서는 카메라로 인한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스코틀랜드 프로축구 경기에서 인공지능(AI) 중계 카메라가 선심의 대머리를 공으로 착각해 따라다니는 오작동을 한 것이다. 프리미어리그와 국내 프로축구 등이 시행하는 비디오 판독은 이미 승패의 운명을 뒤바꾸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골 판정을 카메라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시대가 곧 올 것으로 보인다.

국내 프로배구의 TV 중계화면을 통한 비디오 판독은 사람이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중간 형태를 띠고 있어 오심 논란이 수시로 제기되고 있다. 일부 테니스대회에서 채택하는 전자판독이 도입되면 논란은 수그러들 것이다.

지난 13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배구 흥국생명과 한국도로공사의 경기. 1세트 흥국생명 김연경(왼쪽 첫 번째)이 비디오 판독에서 예상치 못한 판정 결과가 나오자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3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배구 흥국생명과 한국도로공사의 경기. 1세트 흥국생명 김연경(왼쪽 첫 번째)이 비디오 판독에서 예상치 못한 판정 결과가 나오자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올림픽 종목 태권도는 심판 판정의 공정성 논란에 퇴출 위기까지 몰렸으나 전자호구로 돌파구를 마련했다. 전자호구가 발전을 거듭하면서 태권도는 공정성과 보는 재미를 높이고 있다.

2017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메이저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는 미국의 렉시 톰슨이 TV 중계를 보던 시청자 제보로 비디오 판독을 거쳐 하루 지난 최종 라운드 경기 도중 4벌타를 받았다. 당시 3라운드에서 톰슨은 버디 퍼트를 앞두고 공의 위치를 홀 가까이 조금 옮긴 것으로 드러났다. 여유 있게 선두를 달리던 톰슨은 벌타 충격을 이겨내지 못했고, 유소연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톰슨의 벌타 징계는 적절성을 놓고 논란을 낳았지만, 심판이 없는 골프 경기 특성상 선수들의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찬반 논란 속에 기계는 점점 심판의 영역을 잠식할 것으로 전망된다. 스포츠가 전하는 최고 가치가 공정성이기 때문이다. 반면 '오심도 경기의 일부', '오심을 이겨내는 게 진정한 경기력'이라는 등 전통적인 스포츠 가치는 줄어들 것이다.

코로나19가 빚은 대회 중단과 취소, 연기 등 스포츠 참극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체육인들과 팬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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