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벼랑 끝에 선 지역 대학] 〈하〉 폐교대학 퇴로 마련 시급

학교법인 잔여재산 국고 귀속 규정 탓 폐교 이후 사실상 방치
부실대학 출구 마련 공감대 높아져도 규정 변화는 여전히 논란
“폐교대학 종합관리센터 설치하는 등 대책 시급하게 마련해야”

17일 오후 경북 경산시 대구외국어대학교 정문에 출입금지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17일 오후 경북 경산시 대구외국어대학교 정문에 출입금지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채찍과 당근이 함께 필요하다. 입학정원조차 채우기 힘든 지역 대학에 대한 정부의 지원 확대 필요성이 높아지는 한편, 부실대학이 정리될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주는 방안이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행법상 사립대학 운영 법인이 대학을 청산할 때는 잔여 재산이 국가나 지자체에 귀속되기에 교육기관의 기능을 잃고도 문을 닫지 않은 채 연명하는 대학들이 있다. 교육부는 2019년 대학혁신 지원방안을 발표하면서 설립자에게 잔여재산 일부를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폐교대학 종합관리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진척이 없다.

◆잔여재산 국고 귀속 규정, 폐교 방치 원인

지난 15일 찾은 경북 경산의 대구미래대학교 부지는 낡은 건물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건물 내부에는 나무 판자와 각종 비품들이 먼지가 쌓인 채 멋대로 쌓여 있었다. 건물 주변으로는 다듬지 않은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난 모습도 보였다. 캠퍼스 내에 운영 중인 창파유치원을 제외하고는 2018년 폐교 이후 사실상 방치돼온 듯했다.

경산에 위치한 대구외국어대학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정문을 가로막은 펜스에는 '무단 출입 시 처벌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경고문이 걸려 있었다. 이 학교 역시 건물들이 폐교 당시의 모습 그대로며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대학들이 폐교 이후 뚜렷한 활용방안을 찾지 못한 채 부지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것은 사립학교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잔여재산의 국고 귀속'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현행 사립학교법 제35조에 의하면 제2, 3항(정관으로 귀속자를 지정한 경우 등)에 따라 처분되지 않은 재산 중 학교법인의 재산은 국고에 귀속된다.

문제는 앞으로 문 닫을 위기에 놓인 대학들이 급속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사학법인의 비리 등으로 인한 재정난이 대학 폐교의 주된 이유였다면, 이제는 학령인구 감소가 대학들의 목을 죄고 있다.

특히 지역 대학의 경우 입학정원 미달에 따른 등록금 수입 감소 등으로 수도권 대학에 비해 폐교 가능성이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대구 한 대학 관계자는 "재정난이 계속되면 교직원 임금 체불, 교육·연구능력 상실 등 악영향이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그런 상태로 연명할 바엔 퇴로를 열어주고 빨리 정리할 수 있게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대학들의 폐교가 더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지금부터 의견을 모으고 빠르게 대책을 수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17일 오후 경북 경산시 대구미래대학교 강의실 앞에 집기들이 쌓여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17일 오후 경북 경산시 대구미래대학교 강의실 앞에 집기들이 쌓여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출구 마련 중요성 공감하지만 논란 여전

최근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부설 고등직업연구소가 발간한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전문대학 체제 혁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전문대 교수들도 전문대 혁신방안 중 폐교 시 출구 마련을 가장 중요한 사항으로 꼽았다.

이는 전문대 총장 등 전문가 집단을 대상으로 3차례 '델파이 조사'를 거쳐 전문대 혁신방안에 대한 중요도와 우선순위를 도출한 뒤, 전문대 재직 교수를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다. 델파이 조사는 전문가의 견해를 종합해 집단적 판단으로 정리하는 연구방법이다.

그 결과, 전문대 교수들은 ▷폐교 시 출구 마련(4.71점) ▷학과 통폐합(4.19점) ▷국가책임형 공영형 사립전문대학 도입(4.05점)이 가장 중요한 혁신방안이라고 응답했다. 특히 '폐교 시 출구 마련'은 전문가 집단과 전문대 교수 집단에서 모두 가장 높은 평균값을 나타냈다. 그만큼 중요성을 높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출구 마련의 방식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견이 오간다.

이희경 대구보건대 교수(고등직업연구소 연구위원)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전문대학 체제 혁신방안' 연구책임을 맡은 바 있다. 그동안 지원받은 부분에 대한 고려 내지 상환, 반대급부 없이 학교법인이 청산 과정에서 일정 부분 이득을 취하는 게 정당한가에 대해 논란이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해산하려는 학교법인 잔여재산의 일부를 해산 장려금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줘 부실 사립대학들의 폐교를 유도하자는 의견과 수십년간 국고보조금과 학생 등록금으로 형성된 교육자산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게 부당하다는 의견 사이에 합의점을 도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17일 오후 경북 경산시 대구미래대학교 교정이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17일 오후 경북 경산시 대구미래대학교 교정이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폐교대학 종합관리센터 필요

이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한 탓에 정부의 대책 마련은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정부가 제출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법인 해산 시 사회복지법인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했고, 2010년 김선동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사립대학 구조개선 법률안'은 설립자에게 잔여 재산의 30%까지 지급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으나 모두 자동 폐기됐다.

2019년 정부는 정원 감축을 대학 자율에 맡기기로 하는 등의 '대학 혁신 지원방안'을 발표하면서 폐교대학 종합관리 방안을 구체화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마저도 답보 상태다.

강민정 국회의원(열린민주당)은 지난해 국감에서 "한국사학진흥재단이 교육부의 위탁을 받아 폐교대학 관리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해산 학교법인에 대해서만 관리가 이뤄지는 형편"이라며 "교직원들의 임금체불 문제 해결이나 재취업 지원 등 적극적인 보호 방안은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폐교대학을 관리하기 위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폐교대학 종합관리지원센터 설립이다. 사회적협동조합 한국교수발전연구원은 지난해 말 국회의원회관에서 '폐교대학 종합관리지원센터 설립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국회 교육위원회와 한국사립대학교수연합회, 교수노동조합 관계자 등은 지금까지의 폐교대학 관리 법안들은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폐교대학 종합관리지원센터를 설립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홍성학 충북보건과학대 교수는 "관련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대학 통합 관리·지원 ▷학생 관리·지원 ▷실직 교직원 관리·지원 ▷물적 자산 관리·처분 ▷기금 조성·관리가 필요한 과제로 나타났다"며 "보다 근본적이고 효과적인 과제 수행을 위해서는 독자적인 센터 설치 및 재원 확보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특히 폐교대학 교직원들의 사회적 안전망 확보도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주용기 한국교수발전연구원 연구본부장이 2018년 한국사학진흥재단의 연구를 분석한 결과, 11개 대학이 폐교하면서 교원 763명, 직원 257명이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폐교대학 사후 관리가 하드웨어적인 부분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인적 자원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확보 등 세부적인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희경 대구보건대 교수는 "잔여재산 일부를 대학 구성원 퇴직금, 이·전직 지원 등의 명목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이와 더불어 부실 사립대학 폐교를 유도하기 위해 잔여재산 일부를 설립자에 장려금으로 지급하도록 허용하고, 설립자 후손 등의 경우 사유재산에 적용되는 각종 세금을 고려해 일부 금액을 줄여 지급하도록 하는 등 구체적인 법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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