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시대부터 우리 조상은 소금절이와 술, 술지게미를 만들어 먹었다. 고구려에서는 술 빚기, 장 담그기 등의 발효성 가공식품을 잘한다고 했다.(삼국지 위서 동이전) 장(醬)과 함께 김치는 무·오이·박·가지 등을 소금에 절여 양념과 젓갈에 버무려 먹는 한국의 원초 음식이다. 신라, 고려 때까지 소금절이·동치미·나박김치 같은 무 김장이 숙달되어 오다가 배추김치는 비교적 후기에 와서 개발되었다고 전한다.(한국민속대사전)
15·16세기에 우리 조상들은 절인 남새인 김치를 菹(채소절임 저, 훈몽자회) 또는 葅(저, 구황벽곡방·언해벽온방·구급방·구황촬요·벽온신방 등)라 썼다. 구황(救荒) 또는 구급(救急)은 흉년을 대비하는 비상조치 방법을 뜻했다. 벽온(辟瘟)은 오늘날의 코로나19 같은 급성 유행성 질환을 물리치는 방법을 말한다. 우리 선조들은 절인 남새인 김치를 한자로 菹라 썼다. 오늘날의 한한사전(漢韓辭典)에서도 '菹' 자는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김치의 한자어 이름은 침채(沈菜)다.(역어유해·동문유해·역어유해보 등) 소금에 절어 갈앉은 채소란 의미다. 소금물에 절어 가라앉은 채소로, 짭조름한 맛과 촉촉한 질감, 시큼한 맛까지 더해질 수 있는 야채 식품이 김치 아닌가. 어감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우리 선조들은 한자어로 김치를 '沈菜'라 썼다. 17세기부터의 여러 문헌에 나온다.
沈菜에서 김치란 말이 생겨났다. 沈菜를 순우리말로는 '팀ㅊ.ㅣ'(소학언해), '딤ㅊ.ㅣ'(훈몽자회·신증유합 등)라 했다. '훈몽자회'(1527년)와 '신증유합'(1576년)은 우리의 한자 입문서로 '천자문'과 함께 한자 학습에 널리 이용하던 책. '딤ㅊ.ㅣ'란 말이 널리 쓰인 것으로 보인다. 이 '딤ㅊ.ㅣ' 가 '짐ㅊ.ㅣ' '짐츼' '짐치'로 쓰이다가 '김치'가 됐다. 평안도 방언에는 '딤치'가 남아 있으며, 지금도 국내의 여러 방언에서는 '짐치'라 쓰고 있다. '짠지'라고도 한다. '딤채'는 '딤ㅊ.ㅣ'를 현대어화한 말이다. 한국 김치냉장고 중 딤채라는 브랜드도 있다.
'김치녀'란 파생어도 우리 사회에 나돌고 있다. 본인은 아무것도 안 하면서 오직 남자에게만 의존하며, 남자를 하대하고 도구처럼 생각하는 여자라는 뜻이란다. 왜 '김치'에 '녀'(女) 자를 합성해 한국의 일부 여성을 비하하는 말로 삼았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8년 전에 중국의 쓰찬성에서 '파오차이'(泡菜)를 먹어봤다. 한국의 김치와는 엄연히 달랐다. 피클 같았다. '쇤차이'(酸菜)도 김치와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르다. 파오차이가 국제표준화기구(ISO) 표준인증을 받았다고 해서 한국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기보단 중국에서 유통, 판매되는 한국의 김치를 '한국 파오차이' 또는 '파오차이'라 부르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기무치'도 우릴 자존심 상하게 하는 이름이다. 근래 국내에서 김치 소비량이 줄곧 감소하는 것은 우리네 식생활 스타일이 변하는 탓, 김치 수입이 많이 증가하는 것은 노동력과 가격에 대한 부담 탓이다. 웬만한 식당에서는 수입 김치가 싸니 우선 사서 쓰고 보는 탓이다.
김치의 '菹' '沈菜'와 '딤채'란 이름을 우리의 식생활과 산업 현장에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국외에서도 널리 사용, 세계화해야 한국 김치의 정체성이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김치가 억울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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