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영시간까지 시간이 제법 남았다. 장내는 매캐한 담배 연기로 자욱하다. 관객들은 휘파람을 불거나 손뼉을 치거나 발을 구르며 빨리 돌리라고 야단들이다. 열두어 살짜리 어린놈이 과자 등속을 담은 목판을 한 손으로 받쳐들고, 객석 사이를 누비고 다닌다. "사이다요 사이다, 카라멜이요, 오징어…"'(김석배, 「영락좌, 화전동에 둥지를 틀다」, <대구문화> 2020년 6월호)
1930년대 대구 한 극장의 풍경이다. 글을 읽기만 해도 매캐한 담배 연기와 오징어 냄새가 섞여 코끝을 스치는 듯하다. 이 시절 극장 풍경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금의 공연장은 최상급의 시설과 환경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때는 있고 지금은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공연장을 가득 메우는 '관객'이다. 텅 빈 공연장에서 사회적 거리를 두고 앉아있는 관객들을 보노라면, 빡빡하게 앉아 옷깃이 닿던 공연장의 술렁거림과 소음조차 그리워진다. 공연장은 공연뿐만 아니라 '추억'까지 담고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게 되는 요즘이다.
클래식 공연을 생애 처음으로 관람한 공연장, 학교에서 반공 만화영화를 단체로 관람한 장소,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던 콘서트장…. 누구에게나 대구 공연장에 대한 기억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절대 넘보지 못하는 나만의 추억 말이다.
대구에 서양식 개념의 무대가 생긴 것이 1907년이다. 하지만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만 생기면 그곳이 바로 공연장이 되었다. 해방 전후 키네마극장, 공회당, 대구만경관, 계성학교 강당, 6‧25전쟁 이후에는 키네마극장(문화극장, 중앙국립극장), 대구문화장, USIS(미국 공보원), 효성여대 강당, 청구대학(영남대의 전신) 강당, 대구방송국 공개홀(KG홀) 등이 당시 공연 팸플릿에 등장하는 공연장이다.
재미있는 것은 예식장에서도 공연이 열렸다는 사실이다. 특히 대구문화장을 비롯한 예식장들은 피아노가 있어서 연주자들이 즐겨 찾던 공간이다. 옛 공회당 건물을 활용한 KG홀은 그랜드피아노가 있었고 비교적 현대적인 공연 무대와 객석을 갖춰 클래식, 연극과 무용 공연장으로 인기 있었다.
먹고 살기도 벅찼던 1950~1960년대, 문화에 대한 목마름 때문일까. 사람들은 공연이 열리는 곳마다 찾아가 자리를 메웠다. 당시 공연 사진을 보면 객석이 가득 차 있다. 클래식 인구는 지금보다 훨씬 적었을 텐데 말이다. 원로음악인 우종억(90) 지휘자는 "TV 등의 대중매체가 일반화되지 않았기에 볼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공연장에 가야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공연 관람 외에 다양한 정보를 교류할 수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1970년대를 거치면서 대학에서 예술 전공자들이 속속 배출되면서 보다 전문화된 문화시설이 생겨났다. 1975년 개관한 대구시민회관(콘서트하우스의 전신)은 현대화된 음향시설과 무대장치, 객석을 갖춘 최신식 공연장이었다. 1천 7백석의 대극장과 4백 석의 소강당 및 대‧소전시실, 상설전시실 등을 구비한 시민회관은 1990년 대구문화예술회관이 건립될 때까지 15년 동안 대구 공연‧전시예술의 중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2003년 대구오페라하우스가 건립되고 이후 구(區)별 문화회관, 각 대학 공연장이 들어섰고, 시민회관은 클래식 전용홀인 콘서트하우스로 리모델링됐다. 대명공연거리를 비롯한 지역 곳곳에 소극장들도 들어서있다. 2011년 대구미술관이 건립됐고 지역 내 크고 작은 전시장의 숫자는 100여 곳에 이른다. 대구예술발전소와 수창청춘맨숀과 같은 융‧복합 문화공간도 있다. 다른 도시의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문화도시 대구의 면모이다.
하지만 지금 모든 공연장이 멈추어 있다. 평년 같으면 봄을 앞두고 세계적인 수준의 공연이 매일같이 열려, 연일 만원을 기록할 만한 공연장들이 지금은 한산하다. 좋은 공연을 보면서 공연장에서 쌓았을 법한 시민들의 추억도 지난 1년 동안 삭제되어 있다.
이제 함께 공연을 보면서 환호하던 사람들이 그립다. 가끔은 내 의자를 발로 차서 신경 쓰이게 만들었던 꼬마 아이, 옆자리 영화 관람객의 팝콘 냄새가 그립다. 공연을 보고 한꺼번에 일어나 커튼콜을 외치던 옆자리 관객들이 그리운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공연을 만드는 것은 공연 위의 사람들만은 아니라는 것을, 텅 빈 객석을 보면서 다시금 깨닫는다. 무대 위와 아래 사람들이 함께 호흡하던 그 공기, 공연장 언저리를 휘감던 환호성과 설렘마저 공연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요소였다는 사실을.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