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다시, 사투리] ② 예술 속 사투리

음식은 지역 사투리와 함께해야 제 맛

그림 손부엉 일러스트레이터
그림 손부엉 일러스트레이터

2.예술속 사투리

3)안도현, 나의詩 '배차적'

안도현 시인
안도현 시인

스무 살 이후 나는 전북 지역에서 40년을 살았다. 거주 장소가 달라지면 입에 들어가는 음식도 달라진다. 서해를 끼고 있는 이 지역에서 나는 이른 봄에는 주꾸미 숙회를, 여름에는 농어회를 기다렸다. 가을이 오면 전어 굽는 냄새를 편애했고 한겨울에는 물메기탕 끓이는 집을 기웃거렸다. 음식은 그 지역의 사투리와 어깨를 맞대고 산다. 전북에서는 동치미 대신에 싱건지라고 해야 마음이 울렁거린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유별나게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그거이 솔찬히 맛나네, 하면 그만이다.

예천에서 태어난 나는 6학년 때 대구로 전학을 가서 담임선생님의 사투리 때문에 놀란 적이 있다. 청소시간이었다. "휴지 조라." 휴지를 주우라는 건지 휴지를 달라는 건지 헷갈렸던 것. 경북 북부지방의 사투리와 대구 사투리 사이에도 적지 않은 간극이 존재한다. 표준어는 그 간극을 메우려고 애를 쓰지만 사투리는 스스로 독립적인 개체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문자로서의 표준어는 음성으로서의 사투리에 비해 대체로 감성의 표현 능력이 떨어진다.

배차적과 배추적과 배추전

경북 북부지방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배추전을 상에 올린다. 이 슴슴한 음식을 할머니는 배차적이라고 했고, 어머니는 배추적이라고 말했다. 학교에 간 적 없는 할머니가 한글을 배운 어머니보다 더 중세국어의 표현에 가까운 음성을 구사했던 것이다. 지금은 고기나 채소를 기름에 부치는 '전(煎)'과 '적(炙)'을 '부침개' '지짐이' 등과 더불어 구별을 하지 않고 사용한다. 50여 년 전만 해도 내 귀에 들어오던 말은 배추전이 아니라 배차적이었다. 그래서 고향의 음식을 시로 표현할 때 내가 선택한 제목은 '배차적'이었다.

평생 사내 등짝 하나 뒤집지 못한 여자가 마당 돌덩이 화덕에 솥뚜껑을 뒤집어놓는 날, 잔칫날이었지 불을 지피면 바삭바삭 엎드려 울던 잘 마른 콩깍지

속구배이 어구신 배추는 칼등으로 툭툭 쳐 숨을 죽여야 된다 호통치는 소리, 배차적을 부쳤지 가련한 속을 모르는 참 가련한 생을 가지런하게 뒤집었지 돼지기름 끓는 솥뚜껑 위에

배추전이 아니라 배차적,

달사무리하고 얄시리한 슬픔 같은 거

산등성이로 전쟁이 지나가는 동안 아랫도리 화끈거리던 밤은 돌아오지 않았고

멀건 밀가루 반죽이 많이 들어가면 성화를 내던 들판들, 무른 길들을 죽죽 찢어 먹던 산맥들, 고욤나무 곁가지 같던 손가락들

이마의 땀방울을 받아먹던 사그라지는 검불의 눈이 그래도 곱던 시절이 있었니더 아지매는 아니껴?

제삿날에는 퉁퉁 부은 눈덩이로 썰어 먹던 배차적, 여자는 무꾸국처럼 하얘졌지

울진 영덕 봉화 영양 청송 영주 안동 예천 의성 문경 상주

가가호호 배차적 냄새가 송충이처럼 스멀스멀 콧등을 기어갔지

사투리는 함부로 자신을 퍼뜨리지 않는다.

외할아버지의 환갑 때였을 것이다. 마당 한쪽에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마을 아주머니들이 손을 보태 전을 부치고 있었다. 우스갯소리가 오가기도 하는 왁자그르르한 날이었다. 누군가 두텁고 뻐신 줄기 부분은 칼등으로 툭툭 쳐야 숨이 죽는다고 말했다. 우리 어머니가 아내에게 배차적 부치는 요령을 가르칠 때도 그랬다. 별 다른 조리법이 필요 없는 배차적이지만 뜨거운 불판에서 순식간에 골고루 익히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기술이다.

배추의 단 맛은 설탕의 단맛과 다르니 달사무리 해야 하고, 이파리의 두께는 종이처럼 얇지 않으니 얄시리해야 한다. 권오휘 시인에게 얻은 <경북 북부지역 방언사전>을 뒤적거리다가 이 두 개의 형용사를 만났다. 사투리는 명사나 용언에 국한되지 않는다. 어미의 쓰임에 따라 확연한 차이를 보일 때도 있다. 경북 북부지역 안동이나 예천 사투리는 비슷한데 어미가 다르게 쓰이는 경우가 있다. 예천 사람들은 긍정의 의미를 담은 '그래여'를 가끔 섞어 사용한다. 상주나 문경이 가까운 탓이다. 그런데 이 억양이 동쪽으로 내성천을 건너오는 일은 아주 드물다. 사투리는 함부로 자신을 퍼뜨리지 않는다.

내성천 강변에 사는 나는 가만히 묻는다. 배차적을 어따 찍어 먹어야 하는지 아니껴? 양념간장이 아이시더. 배차적은 장물에 찍어 먹어야 하니더.

글 안도현 시인

그림 손부엉 일러스트레이터. 오티스 아트 앤 디자인 칼리지 졸업. 홍익대 대학원 예술학과 수료

이 기사는 계명대학교와 교육부가 링크사업으로 지역사랑과 혁신을 위해 제작했습니다.

◆다시, 사투리 연재 순서

1.왜 다시, 사투리 인가

2.예술 속 사투리

3.사투리와 사람들

4.외국의 사투리 보존과 현황

5.대담

◆사투리 연재 자문단

김주영 소설가

안도현 시인

이상규 전 국립국어원장

김동욱 계명대학교 교수

백가흠 계명대학교 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