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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우리를 지키는 힘 '문배(門排)'

최현정 대구보건대 인당뮤지엄 학예실장
최현정 대구보건대 인당뮤지엄 학예실장

우리 선조들은 집안의 길흉화복이 문을 통해 들고 나간다고 여겨 집 안에 잡귀가 대문을 통하여 들어온다는 인식 때문에 유독 주술적인 벽사(辟邪: 악한 것들을 물리치는 것)의 풍습이 많다.

특별한 의례 없이 집안 고사를 지내고 나서 떡을 조금 떼어내 대문 난간에 놓아두거나, 동짓날 팥죽을 쑤면 대문에 조금 뿌리거나, 아기를 낳으면 금줄을 거는 등의 문화는 대문을 집안의 통로이자 상징이며 중요한 방어기능을 지녔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선 초기의 풍속을 기록한 성현(成俔, 1439-1504)의 수필집 용재총화(慵齋叢話)에는 "이른 새벽에는 그림을 대문간에 붙이는데, 그림은 처용·각귀(角鬼)·종규(鐘馗)·복두관인·개주장군·경지보부인 그리고 닭 그림과 호랑이 그림 따위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궁궐에서 한 해 동안의 질병과 재난 등을 막기 위해 나례(儺禮)를 행한 후 정월 초하룻날 새벽에 문간에 붙이는 그림이나 글씨인 문배(門排)에 대한 설명이다. 초기 문배 그림은 처용상(處容像)처럼 얼굴을 중심으로 그려졌으나 대부분 중국의 무신인 장군상, 선녀도, 신장(神將) 등 인물상 전체의 모습이 중심을 이룬다. 궁중에서 시작된 문배문화는 민간층으로 확산되어 조선 말기까지 성행하였다.

대문에 짝을 이뤄 붙이는 주술적 의미를 띈 문배와 반대로 길상의 의미를 지닌 세화는 서화(書畫)를 관장한 도화서(圖畫署)에서 그림을 그려 신년을 축하하여 왕이 신하들에게 나누어 준 그림이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액막이 '문배'와 길상적 요소를 지닌 '세화'로 구분하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통적 쓰임새를 보였다. 삼재를 막아내는 호랑이 그림과 오복을 가져다주는 용이 짝을 이루는 용호문배도(龍虎門排圖)가 대표적 예이다.

지난 설날을 맞아 2월 11~14일 서울 경복궁 광화문에 문배도(門排圖)가 걸렸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미국 잡지 '데모레스트 패밀리 매거진'(1893년 7월호)에서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내부 사진 속 '금갑장군(金甲將軍·금빛 갑옷을 입은 장군)' 문배도 이미지를 발견하였다.

수년에 걸친 자료조사와 자문회의 등을 통해 현존하는 유일한 완본인 안동 풍산 류씨 하회마을 화경당 문배도를 바탕으로 고증 재현하였다. 문화재청은 조선시대 척사의 의미를 살려 코로나19 극복과 지친 국민의 마음을 위로한다는 취지로 기획하였다고 설명하였다. 오랜 세월 향유한 소중한 세시 풍속으로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자부심을 느끼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강인한 마음을 지닐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최현정 대구보건대 인당뮤지엄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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