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은 1936∼1938년 일련의 공개재판을 통해 경쟁자들을 모두 제거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고참 볼셰비키와 군부에 대한 4차례의 재판이다. 1차가 1936년 8월 카메네프 등에 대한 '16인 재판', 2차가 1937년 1월 퍄타코프 등에 대한 '17인 재판', 3차가 같은 해 5∼6월의 투하체프스키 등 적군(赤軍) 지휘부에 대한 재판, 4차가 부하린 등 21명을 기소해 16명에게 사형을 선고한 '21인 재판'이다.
모두 잘 짜인 각본의 '연출(演出) 재판'이었다. 그 방식은 혹독한 고문과 가족에 대한 협박 등 온갖 폭력을 동원해 날조한 혐의를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사실'이라고 고백하게 하는 것이었다. 객관적 증거는 필요 없었다. 자백이 최고의 증거였다.
피의자들은 이런 연극에 순순히 따랐다. 퍄타코프의 최후 진술은 이를 잘 보여준다. "한두 시간 후면 재판부가 사형을 선고할 겁니다. 저는 제가 지은 죄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채, 제가 저지른 과오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여기 여러분 앞에 추잡스럽게 서 있습니다. 당을 잃고 가족도 잃었으며 자기 자신까지 잃어버린 한 사내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부하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감옥에서 스탈린에게 자비를 구하면서 쓴 편지에서 "총체적 숙청의 정치 이념에는 위대하고 대담한 무엇이 있다"며 연출 재판에서 대본대로 연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자비는 없었다. 그래도 스탈린과의 약속은 지켰다. 재판에서 부하린은 '반혁명 조직'에 가담했다는 '포괄적 혐의'를 인정했다. "내가 어떤 특정 행위를 알았든 몰랐든, 내가 그것에 가담했든 안 했든 상관없이 그렇게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세월호 사고에 대해 "유족이 원하는 방향대로 진상 규명이 속 시원하게 잘 안 되고 있어서 안타깝다"고 했다. 이에 앞서 서울중앙지법이 15일 퇴선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기소된 해경 지휘부 10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자 유족들이 크게 반발했다. 결국 문 대통령의 말은 유족이 원하는 대로 유죄가 나왔어야 한다는 뜻이다.
대통령이기에 앞서 법을 공부했다는 사람의 입에서 어떻게 이런 무지막지한 소리가 나올 수 있는지 말문이 막힌다. 유족이 원하니 무죄도 유죄로 둔갑시켜야 한다면 딱 맞는 방법이 있다. '스탈린식 연출 재판'이다. 스탈린에게 한 수 배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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