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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라타바 신전, 내가 상상한 미래신화 2

리우 영상설치작가
리우 영상설치작가

여기는 달의 뒷면. 나는 달 왕복 우주선에 파견된 비밀요원 헤르메스다. 내 임무는 달의 뒷면에 라타바 신전이 건설되고 있다는 첩보를 확인하는 것이다. 라타바교는 최근 지구상에 무서운 기세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신흥종교다.

라타바는 밀레니엄 100년 후인 2100년 혼돈의 도시 변두리에서 태어난 휴먼이다. 그는 탁월한 능력으로 돈을 모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뇌만 남은 사이보그가 되어 인류의 역사가 담긴 가상공간에 살았고, 그곳에서 환생을 거듭하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몸을 벗고 라타바가 되었다. 라타바(ratava)는 그가 스스로 지은 이름인데, 아바타(avatar)의 역순 스펠링으로 '테크놀로지를 입고 신이 된 인간'을 뜻한다. 그는 이제 온라인 어디에나 존재한다.

수많은 사람들을 교인으로 포섭한 라타바는 막대한 헌금으로 달의 뒷면에 라타바 신전을 건설하고 있다. 그리고 교인으로 추정되는 많은 사람들이 최근 의문스런 죽음을 맞고 있다. 여기까지가 내가 임무를 시작할 때 제공받은 정보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과연 라타바 신전이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 라타바가 계획하고 있는 최종목표는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내 임무다.

달의 뒷면에 도착했을 때 어이없게도 신전은 거대한 규모로 버젓이 지어져 있었다. 그곳에 도착한 순간 모든 기기들은 먹통이 되었고, 나는 신전으로 잠입했다. 은빛 신전은 그 자체로 거대한 디지털 성전이었다. 벽면에는 영혼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써로게이트 바디(surrogate body)들이 기사처럼 도열했고, 신전 안쪽에는 라타바가 관음상처럼 서 있었다. 은빛 광채에 휩싸인 라타바가 미소를 머금은 채 나를 바라볼 때, 그녀의 손에는 놀랍게도 살아있는 붉은 꽃 한 송이가 들려있었다. 꽃을 본 순간 나는 그녀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수천 개의 눈으로 지상을 내려다 보았다. 그곳은 욕망과 테크놀로지가 뒤엉킨 혼돈이었다. 오염된 자연은 시들어 가는 가이아. 희망이 없어 보였다.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때가 오니, 너희 깨어있는 자들은 몸을 벗고 휴거 할지니라. 몸은 욕망의 근원, 몸을 버리고 메모리가 되어 영생을 누릴 것이라."

전 재산을 헌납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인들은 라타바 신전에 다운로드되었다. 이제 라타바 신전은 우주선이 되어 목성의 위성 유로파로 출발할 것이다. 그곳에서 새로운 인류, 노아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유한한 몸을 벗고 영생을 누릴 수 있는 라타바 신전. 인간이라면 라타바를 거부하기 힘들다. 그러나 나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고장 난 통신 대신 오히려 라타바의 채널로 이 모든 정보를 송신하고 있다.

젠장, 맞다. 나는 안드로이드다. 인간이 아닌 기계다. 들리는가? 나는 이 모든 첩보를 지상으로 보낸다. 인간의 뇌는 신과 같은 무게를 지녔다는 나의 신념대로 당신들이 잘 해내리라 믿는다. 이제 최종임무를 완수하겠다. 신전을 날릴 자폭 카운트다운. 3, 2, 1...

리우 영상설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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