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라스트 레터

영화 '라스트 레터'의 포스터.
영화 '라스트 레터'의 포스터.

"오겡끼데스까(お元気ですか)"

22년 전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일본영화 대사다. 하얀 설원 위에서 여주인공이 이미 떠난 사람을 그리며 "잘 지내고 있나요?"라고 외치던 장면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1995). 일본 문화 개방과 함께 1999년 개봉해, 아련한 첫 사랑의 추억을 일본 특유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그려내 한국 관객들을 감동시킨 영화였다.

22년 만에 이와이 슌지 감독의 레터 시리즈라고 할 '라스트 레터'가 지난 24일 개봉했다. 잘못 배달된 편지로 인해 첫사랑의 아픈 사연을 그렸던 '러브레터'처럼, '라스트 레터'도 편지를 통해 아련한 첫사랑을 추억하게 하는 영화다.

영화 '라스트 레터'의 한 장면
영화 '라스트 레터'의 한 장면

언니 미사키(히로세 스즈)의 장례식을 치른 유리(마츠 다카코)는 부고를 전하기 위해 언니의 고교 동창회에 참석한다. 자신을 언니로 오해한 동창들로 인해 차마 언니가 죽은 사실을 전하지 못한다. 과거 유리 자신이 짝사랑했던, 정작 그는 언니 미사키를 좋아했다, 쿄시로(후쿠야마 마사하루)와 재회한 유리는 그에게 편지를 보내게 된다.

어긋한 편지 수신자라는 플롯을 이번에도 사용했다. 25년간 첫사랑을 잊지 못한 소설가 쿄시로는 둘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첫사랑의 여동생과 첫사랑의 딸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사랑했던 그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라스트 레터'는 아날로그 감성에 목을 매는 영화다.

꼭꼭 눌러 쓰는 편지에 주인공이 첫사랑인 그녀가 그리워서 출판한 단 한 편의 소설, 교복 입은 그때 소년과 소녀의 소환, 필름 카메라와 인화된 사진, 우체통과 우체부. 20여년이 넘었지만 그 풍경은 지금 일본의 모습 그대로이고, 감독 또한 그 감성을 떠나보내기 아쉬워한다.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를 놓지 못하는 집착이랄까?

영화 '라스트 레터'의 한 장면
영화 '라스트 레터'의 한 장면

갑자기 날아든 편지로 주인공은 과거로 떠난다. 녹음이 짙은 여름날 교정. 남학생은 전학 온 여학생을 만난다. 어린 쿄시로는 첫눈에 사랑에 빠져 손편지로 마음을 전한다. 직접 전할 용기가 없어 동아리 후배이자 미사키의 동생인 유리가 편지 심부름을 한다. 그러나 유리 또한 쿄시로를 은근히 사모하고 있었던 것. 꼬여버린 둘의 사연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관객의 마음을 애타게 한다.

'라스트 레터'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고향인 센다이에서 촬영됐다. 어린 시절 감독과 함께 했을 공간들이 감독의 정서를 잘 드러내준다.

'러브레터'가 겨울이고, '라스트 레터'가 매미 소리 쨍한 여름인 것을 제외하고 등장인물과 에피소드, 그들을 엮는 정서와 감성은 모두 '러브레터'의 변주다. 죽은 첫사랑이 산 사람을 통해 전이돼 되살아나는 것도 그대로다. 그리움은 여동생을 거쳐 첫사랑의 딸에게로 건너가 영화 후반, 아주 오랫동안 머문다.

'라스트 레터'는 풋풋한 지나간 청춘에 대한 추억, 첫사랑의 순수함에 대한 그리움, 그 모든 것을 안타깝게 보내고 지금 다시 반추하며 오래된 앨범을 들추게 하는 그런 영화다. 닿을 듯 말 듯 지나가버린 아쉬움이 가슴을 애잔하게 만들기도 한다.

영화 '라스트 레터'의 한 장면
영화 '라스트 레터'의 한 장면

'러브레터'에 출연했던 나카야마 미호와 토요카와 에츠시가 부부로 출연하고, 이와이 슌지 감독과 오랜 친분을 유지해온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의 안노 히데아키 감독이 유리의 남편으로 얼굴을 내민다. 거기에 '4월 이야기'의 마츠 다카코까지,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를 통해 보아온 여러 인물들의 근황을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다.

'러브레터'에 대한 그리움이 짙은 관객들에게는 또 한번 이와이 슌지 감독의 감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25년이 지나도 성장하지 못하고 여전히 아날로그의 추억에 갇힌 감독의 소모적인 배회를 보는 듯해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다. 캐릭터들도 지극히 부자연스럽고 평면적이고, 플롯도 구태의연하다. 10대의 풋풋한 사랑에서부터 노년의 사모까지 담아내려고 했지만, 그것 또한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맛이 없다.

특히 첫사랑의 존재가 그녀와 쏙 빼닮은 딸에게로 건너와 중년이 된 남자 주인공과 교감할 때는 그것이 너무나 의도적이고, 부자연스러워 아연실색케 한다. 감독의 시선은 여전히 과거 지향적이고, 연민에 사로잡혀 있고, 유아적이다.

'라스트 레터'는 만나지 말아야 할 첫사랑을 본 것 같은 아쉬움을 주는 그런 영화다. 120분. 전체 관람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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