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연 작가는 아이들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썼다. 지난해 11월 황금가지에서 출간된 '패키지'도 아이가 볼모로 잡혔고, '유괴의 날'은 아예 제목에서부터 아이가 등장했다.
이번 작품도 아이들이 하드캐리한다. 평범한 사건 전개는 작가의 체질에 안 맞다. 평화롭게 마무리되는가 싶으면 전환의 "그런데 말입니다"가 나온다. 주인공들이 놀라 내지르는 한 키 높은 새된 소리들이 여러 번 환청처럼 들린다.
'구원의 날'의 진행은 스릴러물의 존재 이유인 반전과 대반전, 그리고 또 대반전이 베이스다. 3년 전 불꽃놀이 축제에서 아들 선우의 손을 놓친 엄마 예원은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충동조절장애를 앓게 된다. 정신요양원에 입원한 예원은 그곳에서, 선우만의 전유물로 알았던, 개사 동요를 부르는 로운을 발견한다.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앞다리가 쑥, 뒷다리가 쑥, 똥통에 빠져버렸네."
아이를 찾으려는 모정은 동요 한 소절에도 귀가 번쩍인다. 한 소절만 바뀐 동요 '올챙이와 개구리송'은 예원이 로운을 선우로 착각하는 근거가 된다. 예원은 경비가 느슨한 틈을 타 충동적으로 로운을 데리고 정신요양원에서 탈출한다. 예원과 로운은 평행이론처럼 상실의 상처를 안고 있다. 로운이 애타게 찾는 모성은 선우를 애타게 찾는 예원이 분출해낸다.

독자가 기대한 스릴러물 특유의 '그런데 알고 보니 ~였다'는 '전환의 법칙'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건 이때부터다. 로운이 선우와 다름을 이성적으로 인지하게 된 예원 앞에서 로운은 선우를 안다고 말한다. 로운이 정신요양원으로 돌려보내지기 직전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남편 선준도 동요한다. 입소문이 난 맛집 메뉴에 비유하자면, 담백한 맛 스릴러가 한 번의 반전으로 독자에게 서프라이즈를 훅 던지겠지만, 담백한 맛을 넘어선 정해연의 소설은 서프라이즈로 고조된 긴장감을 한 번 더 쥐고 틀어준다. 로운이 선우를 만난 곳은 사이비 종교의 기도원이었고, 그런데 말입니다, 기도원은 실체가 없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수차례 등장하는 국면인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유려한 비유와 무릎을 탁 치는 풍자나 해학이 빛나는 작품은 아니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심정을 또렷이 느끼게 해주는 표현들, 이를테면
"1시간 30분을 운전해 달려왔기에 피곤하기도 했지만 커피를 달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계속 이랬다. 커피를 마시거나, 밥을 먹거나, 잠을 자는 모든 일상적인 것들이 자신이 해서는 안 되는 일처럼 느껴졌다."라든지
"불쌍, 이라는 단어가 선준의 귀를 긁었다. 예원은 계속해서 뭔가 소리를 치고 있었는데 이젠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날카로운 통증이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혈류 속에 통증이 도사리고 있다가 공급되는 듯 일정한 속도로 선준을 괴롭혔다." 같은 문장에서는 작가의 공감 능력을 칭찬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정해연 작가의 특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간결한 문장이다. 정체될 틈이 없다. 8부작 미니시리즈를 52부작으로 늘려 잡는 행태를 혐오하듯, 막힌 혈 뚫듯 빠르게 이야기를 흘려 나간다.
작가는 가족이라서 할 수 있는 용서와 가족이기 때문에 더 잔인하게 다가오는 상황을 상상했다고 한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이것은 결국 손의 이야기, 용서의 이야기"라고 했다. 살면서 많은 손을 잡고, 놓고, 놓치는데 놓친 손은 다시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작품 말미에서도 선우와 아빠 선준은 이렇게 묻고 답한다. 제목이 '구원의 날'인 까닭을 짐작할 수 있는 부자간의 대화다.
"지난번에 의사 선생님이,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했는데…… 일상이 뭐야?"
"행복해지는 거."
287쪽. 1만3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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