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애가 글을 읽으면 요망스럽게 되지 않고, 늙은이가 글을 읽으면 노망이 들지 않는다."
조선시대 최고의 문장가인 박지원의 '연암집'에 실린 글이다. 우리 선조들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며 서책을 소리 내어 읽으며 공부했다. 낭독(朗讀) 학습법이다. 근대에 이르러 인쇄술의 발달로 책이 대량으로 출판되면서 소리를 내지 않고 읽는 묵독(默讀)이 보편화되었다. 즉 눈으로 책을 읽으며 의미를 음미하는 방식이 일반화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 낭독 독서법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필자도 낭독을 독서모임에 활용한 경험이 있다. 독서모임에 참석자가 점점 줄어들었다. 책을 미리 읽어 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책을 읽지 못한 회원들이 모임에 오는 것을 포기했다. 그래서 모임 방식을 변경했다. 미리 읽고 오는 게 아니라 모임에 와서 회원들이 돌아가며 책을 한 장씩 낭독하는 방식으로 했다. 낭독 독서 토론으로 바꾼 후에는 책을 미처 못 읽었다는 죄책감으로 모임에 빠지는 회원이 거의 없었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에서 낭독의 힘과 매력을 설파한다. 사람들은 흔히 '독서'라고 하면 '고적한 곳에서 눈으로만 읽는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독서(讀書)의 원래 의미는 큰 소리로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냥 눈으로만 보는 것은 간서(看書)였다. 소리 내어 읽으면 우울한 이들은 명랑해지고, 기분이 들뜬 이들은 오히려 차분해진다고 한다. 고미숙은 낭독이 삶을 바꾸는 독서법이라고 강조한다.
작년 4월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도서관에서 초등학생 대상 온라인 낭독 독서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첫 시간에 아이들은 책을 읽는 목소리에 힘이 없고 숨도 가빠했다. 중간중간 끊어 읽는 것도 힘들어했다. 그런데 몇 번 수업에 참여한 후에는 아이들이 변화되었다. 책을 읽을 때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낭독했고 목소리도 또랑또랑해졌고 숨도 편안해졌다.
낭독의 긍정적인 효과에 대한 연구사례도 있다. 20대 대학생 60명을 낭독과 묵독 두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했다. 20분간 시집을 읽게 한 다음 10분 동안 기억력을 테스트했다. 낭독을 한 팀이 묵독을 한 팀보다 결과가 높게 나왔다. 낭독은 공부하는 학생뿐만 아니라 노년층의 치매 예방과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고 밝혀졌다. 소리를 내어 책을 읽으면 뇌의 창의적 기능과 인식 기능도 발달한다고 한다.
살랑살랑 봄 바람이 부는 3월, 낭독 독서의 매력에 빠져 보면 어떨까. 산책하기에도 좋은 계절이지만 책 읽기에도 좋은 때다. 혼자 읽는 것도 좋지만 함께 읽으면 더욱 좋다. 어떤 책이라도 상관없지만 고전 낭독 독서를 추천한다. 혼자 읽기에는 부담되는 책이지만 함께 소리 내어 읽는다면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맛보게 될 것이다.
제갈선희 대구2·28기념학생도서관 독서문화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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