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처음으로 할머니께 편지를 씁니다. 요즘 유난히 할머니 생각이 자주나요. 자그마한 얼굴에 쪽 진 머리. 160cm 가 넘는 키에 유난히 길고 늘씬하셨던 할머니의 다리. 그리고 할머니 턱 아래 목주름. 그 목주름을 유난히 좋아해 조물조물 자꾸 만져대던 막내 손녀의 버르장머리 없는 장난도 할머니는 그저 귀엽다며 웃으며 다 받아주셨죠.
중1 여름방학으로 기억해요. 할머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온 가족이 부리나케 대구로 달려갔었죠. 제가 기억하는 '가까운 가족의 죽음'. 그 첫 이별이 바로 할머니였어요. 함께 산 시간보다 떨어져 지낸 시간이 훨씬 많았지만, 명절마다, 집안 행사 때마다 찾아뵈던 할머니 모습은 늘 반가운 모습 그대로였답니다. 막내아들의 막내딸. 서열상 제일 꼴찌인 제게 늘 넉넉히 웃어주고 품어주시던 모습이 기억나요.
가족의 죽음. 그 이별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끝 모를 슬픔에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의성 시골에 할머니 입관식이 있던 날. 영구차 버스 뒤에서 엎드려 자다가 대성통곡하는 아버지의 울음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어요. 할머니의 관이 땅 아래로 내려갈수록 엎드려 울던 아버지의 상체는 더 세게 들썩이고,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졌어요. 그땐 그 슬픔을, 사랑하는 가족, 부모를 잃는 마음이 얼마나 큰 슬픔인지. 그 마음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했어요.
할머니, 작년 이맘때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트로트 열풍이에요. 그때 알게 된 노래가 있어요. "막걸리 한 잔" '온 동네 소문났던 천덕꾸러기 / 막내아들 장가가던 날 / 앓던 이가 빠졌다며 덩실 더덩실 / 춤을 추던 우리 아버지'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자꾸 눈물이 나려해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우리 아버지가 참 많이 생각나거든요. 어쩜 이렇게 가사가 찰떡일까요? 못 먹고 못 살던 그 시절,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해주지 못하는 부모를 원망하고 엇나갔던 막내아들.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이 고팠던 막내아들, 우리 아버지. 아버지가 정말 말썽꾸러기였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어요. 그때 살림살이가 조금 넉넉했다면, 우리 아버지 마음도 조금 더 넉넉해졌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할머니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조금 더 따뜻한 세상에서 살 수 있었을까... 할머니께서 더 오래 사셨더라면, 세상에 부딪히고 깨지고 멍든 아버지의 마음이 조금 덜 다치고, 더 빨리 낫지 않았을까...상상해봅니다.
분명 할아버지 할머니도 우리 아버지를 아끼고 사랑하셨을 텐데, 왜 서로 그 마음을 확인하지 못한 채 이렇게 이별을 했을까요. 서로 오해를 풀고 용서하고 안아주며 이별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갑작스런 이별에 아버지 가슴 한편에 얼마나 많은 후회와 원망이 쌓여있을까요?
사실 아버지와 언니 사이가 좋지 않아요. 아버지 가슴에 쌓여있는 후회와 원망이 언니에게 대물림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제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상하기도 해요.
작년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한 이후 아버지 마음이 더 힘드신지 의성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를 찾아뵙길 원하셨어요. 작년 설날, 어버이날, 추석 그리고 이번 설날까지.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뵈면 아버지는 항상 기도를 하신답니다. 그 소원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언니네 가족과 화해하길 바라지 않으실까 짐작해보아요.
할머니, 내일모레면 우리 아버지도 칠순이 되세요. 세월이 왜 이렇게 빠를까요? 저는 이제 할머니를 보낼 때 아버지 나이가 되었어요. 전 여전히 세상살이는 잘 모르지만, 부모의 나이 듦이 서글퍼지는 건 알게 되었어요.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할머니 옆에 누워 할머니의 말랑말랑한 턱을 조물거리며 응석부리고 싶어요. 그때 우리 아버지는 참 어른 같았는데, 전 여전히 어린 아이 같아요.
할머니, 이번 어버이날에도 부모님과 함께 카네이션 들고 찾아뵐게요! 비록 얼굴 보고 만지고 함께 할 수 없지만, 마음으로는 저희를 두 팔 벌려 기쁘게 맞이해 주실 거죠?
마지막으로 옛날처럼 불러보고 싶어요. 할매! 많이 보고 싶어요, 우리 할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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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이 유명을 달리하신 지역 사회의 가족들을 위한 추모관 [그립습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귀중한 사연을 전하실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서를 작성하시거나 연락처로 담당 기자에게 연락주시면 됩니다.
▷추모관 연재물 페이지 : http://naver.me/5Hvc7n3P
▷이메일: tong@imaeil.com
▷사연 신청 주소: http://a.imaeil.com/ev3/Thememory/longletter.html
▷전화: 053-251-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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