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65) 씨의 딸 B(38) 씨는 지난 2003년 지하철 화재 참사 이후 삶이 무너져 버렸다. 고등학교 내내 반장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똑똑하고 성실했던 B씨는 학원 가는 길에 참사를 당했다. 사고 이후 멍하니 혼잣말을 내뱉는 딸을 보다못한 A씨는 치료를 받게 해야겠다는 마음에 B씨를 병원에 데려갔다.
하지만 정신병동에서 수면제, 우울증약을 받는게 고작이었고, 이후 일반병동으로 옮긴 뒤 심리치료를 받게 됐지만 딸은 심한 거부감을 보였다. 사고를 떠올리는 치료가 워낙 고통스러웠던 탓에 이후 어떤 심리치료도 받지 못했다.
A씨는 "딸은 아직도 머리에서 쥐가 난다고 한다. 참사 이후 남편은 죽고 딸은 수시로 자해하는 등 가정이 풍비박산난 지 오래다. 애초부터 부상자들을 대상으로 한 제대로 된 심리치료가 있었으면 이렇게까지는 안됐을 것"이라고 했다.
대구 지하철화재 참사 부상자들이 여전히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가운데 대구시의 심리지원책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 지난 2019년 대구시는 '대구 지하철화재 사고 부상자 의료지원 조례'를 만들어 의료비 및 심리치료비 지원을 시작했다. 지난해 9월에 시작된 심리치료비 지원은 부상자들이 대한적십자의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에 가서 1차 상담을 받은 뒤 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으면 1인당 40만원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심리치료비 지원을 받은 부상자는 아직 단 한 명도 없다. 지난해 지하철화재 부상자 지원 예산도 1억5천만원 중 약 6천100만원이 남은 상태다. 이런 심리지원책이 부상자들에겐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부상자 대부분 '참사 피해자'라는 사실조차 드러내기 꺼리는 상황에서 지원비를 받기 위해 진행하는 1차 상담 과정과 병원 진료가 새로운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이유다.
대구지하철화재참사부상자가족대책위원회(이하 부상자대책위) 관계자는 "대부분 부상자들은 자신들의 사고 사실을 어떻게든 숨기려고 한다. 정신과에서 약물치료만 받다가 돌아가신 분도 있다보니 병원에 가면 약물치료, 진정제 투입 등만 이뤄질 뿐 제대로 된 심리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인식이 있어 병원을 극도로 꺼린다"고 했다.
심리지원책 마련이 너무 늦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상자대책위에 따르면 부상자들의 90% 이상이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정신 질환을 앓다가 가정이 와해되거나 노숙 생활로 내몰리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이동우 부상자대책위원장은 "트라우마 극복 치료를 통해 기존 병원 치료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것이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정신과 전문의나 심리상담 전문가들이 모여 가정방문이나 특정 공간에서 상담을 진행하는 등 장기적인 심리 치료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대한적십자사와 별도로 협약을 해서 참사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의사와 전문가들이 있는 만큼 충분한 상담을 받을 수 있고 치료가 필요하면 금액도 지원해주고 있다"고 했다. 한편 지하철 참사 부상자는 당시 151명 중 현재 139명이 생존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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