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치는 조선 중종 때 송도에 산 기인이자 도술가다. 밥풀을 내뿜어 흰 나비를 만들고, 산수간에 노닐며 둔갑술과 몰귀술을 얻었다. 옥에 갇혀 죽은 후 이장하려 무덤을 파니 시체는 없고 빈 관만 남아 있었다. 지봉유설, 어우야담, 그리고 이덕무의 한죽당필기 등에 기인술사 전우치의 행적이 전한다. 흰여우를 잡아 비급을 얻고, 천도복숭아를 따고, 장살된 후에도 빌린 두보집을 돌려주곤 홀연히 숲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전우치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이런 상상을 해본다. 혹시 전우치는 안견이나 겸재의 산수그림 속에서 벽곡하며 유유자적 살고 있진 않을까? 나는 그림 속으로 찾아가 그에게 세상에 나오지 않는 이유를 묻는다. 전우치는 읽던 책을 덮고 흰 구름을 한 번 쳐다 본 다음 이렇게 대답한다.
"이보시오. 대저 도술이라 하는 것이 기이한 현상으로 사람들을 돕는 것인데, 이제 그런 도술이 하나도 신묘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소. 생각해보시오. 축지는 땅을 접어 수백 리를 뛰는 것인데, 자기부상열차니, 날틀이니 하는 것들이 대신하고 있지 않소. 전음은 또 무슨 소용이겠소. 스마트폰이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마당에. 유체이탈? 인터넷으로 순간이동을 하는 세상이오. 둔갑술? 아바타가 처처에 출몰하는 세상에? 뿐이겠소, 평생 피나는 수련으로 분신술을 익히고, 단전호흡으로 원신을 키워낸들 D.N.A 복제와 유전자 가위를 이겨낼 수 있겠소? 나도 한때 천상계의 천도복숭아를 따고, 옥황상제의 칙사인양 왕을 속여 얻은 황금들보로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였소. 허나 이제 그런 도술이 가당키나 한 세상이오? 곧 달나라 월석 수집이 사람들의 취미가 될 거외다. 하하하"
나는 자세를 고쳐 앉은 후 간절한 마음을 담아 전우치에게 말한다.
"소인이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선가에 좌도방과 우도방이 있다 합니다. 좌도는 무공이나 기 능력으로 방술, 선술과 같은 실제적 효과를 추구하며, 우도는 이(理)에 관심을 두고 사물의 본질과 근원을 이해하려 애쓴다지요. 그렇게 영화선이니, 기화선이니 나누어 부른다지만 말로 나누어 오르는 길이 다를 뿐, 어찌 그 뜻을 얻어 깨닫는 경지가 다를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서쪽 무리들의 과학기술이라는 것이 남북동서간 인간 세상에 편리함과 양생의 도를 터득하여 사이보그와 인공지능(A.I)으로 무색계 사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합니다. 허나 그들의 저 테크놀로지라는 것이 인간의 욕망을 채워줄 비술로만 치달아 천지간의 조화와 만물의 균형이 깨어진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비록 옛 사람들의 도술을 현실에 구체화한 신묘한 과학의 힘을 모르는 바 아니나, 연단술 너머 자연과 합일하는 무한한 기쁨을 저들이 알겠습니까? 우화등선 옛 그림에 들어 상사천, 무량수를 누리시는 지극한 경지를 소인이 다 알순 없으나, 바라건대 그림 밖으로 날아올라 세상을 가로지르며 홍익인간의 뜻을 펼쳐주소서. 이제 때가 되니, 부디 동국 나비무사 전우치의 기개와 뜻을 세상에 드러내소서."
의아한 눈으로 한동안 나를 바라보다가 벌떡 일어난 전우치의 도포자락이 나비의 날개처럼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리우 영상설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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