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햇볕정책, 허망한 희망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외교 참사의 대명사로 불리는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은 히틀러의 야망에 대한 오판과 히틀러를 다룰 수 있고, 그를 다뤄 유럽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다는 엉뚱한 자신감의 합작품이었다. 실패는 예정돼 있었던 것이다.

히틀러의 머리에서 '전쟁'이 떠난 적은 없었다. 체임벌린은 독일 내 반(反)히틀러 진영으로부터 이런 정보를 수시로 받았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독일 주민이 많은 주데텐란트의 자치권을 두고 독일과 체코슬로바키아가 군사 충돌 직전까지 갔던 1938년에도 그랬다. 그해 8월 아직 준비가 안 됐다며 전쟁을 반대하고 있던 독일 군부 온건파의 비공식 사절이 영국을 방문해 "독일에는 히틀러를 제외하고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전했다.

그러나 체임벌린은 그가 반히틀러 인사라며 신뢰하지 않았다. 영국의 대독(對獨) 강경 자세를 유도하고 이를 통해 독일 내 반히틀러 진영을 자극해 나치 체제를 전복시키려 하기 때문에 그가 한 말은 상당히 걸러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체코슬로바키아 문제 해결을 위해 체임벌린이 독일로 날아가 히틀러와 세 차례 회담을 한 것은 자신이 문제 해결의 주역이라는 허영심의 발로였다. 그가 여동생들에게 한 말은 이를 잘 보여 준다. "내 손으로 커다란 돌덩이를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내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유럽의 전체 운명이 바뀌는 그런 상황이 됐다."

이런 자신감은 1939년 뮌헨협정에서 주데텐란트를 독일에 넘겨준 뒤에 절정에 올랐다. 영국으로 돌아와 공항에서 히틀러와 공동 서명한 합의서를 흔들며 체임벌린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시대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한국 '진보' 정부들의 대북정책도 마찬가지다. 북한 독재자 부자의 생각에 대한 오판과 문호 개방으로 북한을 변화시킨다는 엉뚱한 자신감의 합작품이다. 허버트 맥매스터 전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2일 이를 재확인했다.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 제출한 서면 증언에서 그는 "북한에 대한 역대 외교 시도가 실패한 것은 잘못된 전제 때문"이라며 그중 하나로 "북한에 대한 문호 개방이 그 정권의 본질을 변화시킬 것이란 허망한 희망"을 들었다. 그는 이것이 "때로는 햇볕정책이라고 불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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