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전 8시, 선전포고처럼 울리는 알람 소리를 시작으로 워킹맘의 하루는 시작된다. 아이를 깨워 아침밥을 먹이고, 씻기고, 옷을 입힌다. 아차, 가방도 싸야 한다. 도시락부터 야외 활동 때 입을 겉옷까지. 잊은 건 없는지 몇 번이고 확인한다.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회사에 도착하고 나서야 한숨 돌리는데. '삐릭' 곧장 울려오는 메시지 알림음. "홍시 어머님~ 오늘은 홍시 기분이 아주 좋아 보이네요. 1교시 영상 함께 첨부합니다"
반려견 인구 천만 시대. 주인들의 사랑과 근심은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강아지의 사회성을 길러주기 위해 교육기관의 문을 두드리고 집에 혼자 두고 외출을 할 때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몇 번이고 문 앞을 서성인다. 3살 크림푸들 '홍시'를 키우고 있는 최지원(37) 씨는 9개월 전 애견 유치원 학부모가 됐다. "집 지키는 게 개의 역할인데 뭐가 그리 유난이냐는 말도 들었어요. 하지만 어떡해요. 내 자식 잘 키워보고 싶은 부모 욕심이 큰걸요"


◆ 강아지 유치원 일과 학부모에 실시간 공유
대구 남구 대명동의 한 강아지 유치원. 주인들이 하나둘 강아지를 안고 오면서 유치원의 하루가 시작됐다. 대형 유치원은 차로 데려오고 데려다주는 픽업 서비스까지 있다고 하지만 이곳은 소수 정원이라 버스는 따로 없다.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 떼쓰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했건만 울타리가 열리기 무섭게 홍시가 질주한다. "유치원 건물에 도착하면 어떻게 아는지 내려달라고 바둥대요" 그 덕에 지원 씨도 맘 놓고 출근을 한다. 뒤도 안 돌아보고 유치원 내부로 쏙 들어가 버린 홍시. 곧이어 1교시를 알리는 선생님의 외침이 들려온다.
오전 10시. 아침 산책이 첫 일과다. 근처 공원까지 옹기종기 모여 이동하는데 10명 내외 아이들을 선생님 혼자 컨트롤한다. '참새 짹짹, 오리 꽥꽥' 구호도 하나 없이 알맞은 보폭으로 걷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한 녀석은 볼일까지 시원하게 마쳤다. 선생님은 곧장 배변 봉투를 꺼내 드는데, 웬일인지 묵직한 그것의 상태를 유심히도 쳐다본다. 그리고 몇분 후 학부모 알림방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소망이, 10시 30분, 상태는 묽음'.

"매일 아이들의 대변 상태를 SNS로 알려줘요. 강아지들은 대변 상태로 건강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데. 선생님이 체크해 주시니 더 만족합니다" 아이들의 일과를 궁금해하는 학부모를 위해 유치원은 SNS로 알림방을 운영한다. 오늘은 어떤 음식을 먹었고, 어떤 강아지와 제일 친하게 지냈으며, 어떤 활동을 배웠는지 등을 상세하게 적어주는 '피드백 서비스'다. 유치원에 강아지를 보내는 견주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 되기도 한다. 아이들의 영상이 올라오면 견주들은 제 자식처럼 관심을 보이고 댓글을 단다. 때론 옷가지들을 저렴하게 구입하는 팁 같은 사소한 일상도 공유한다고 한다.


◆ 강아지 성격·건강 상태 따라 맞춤 교육 적용
"밖에 나갔다 왔으면 손발부터 씻어야죠" 선생님의 호통에 강아지들이 일사불란 흩어진다. 손 씻기 싫어했던 어린 시절이 새삼 떠오르려던 찰나, 반장을 맡고 있는 칸예(5)가 화장실로 들어간다. 칸예는 선생님이 키우는 강아지로, 이 유치원의 터줏대감이다. 말도 잘 듣고 친구들을 잘 챙기는 칸예 덕분에 선생님도 일이 조금 수월하다. 칸예의 솔선수범 덕분에 뽀송해진 모습으로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는 강아지들. 옥상으로 이동하며 2교시가 시작된다. 2교시는 인조잔디가 깔린 옥상에서 목줄 없이 신나게 뛰노는 시간이다. 아파트나 주택에 사는 반려견들은 산책 만으로 활동량을 충족시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맘껏 뛰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애견 유치원은 아이들의 욕구를 충족 시킨다.
그렇다고 배워가는 게 없으면 돈 들여 유치원에 보낼 이유가 없다. "유치원에 보냈더니 ~도 하더라" 이런 입소문을 타고 유치원 업계는 성장해 왔지 않겠는가. 3교시는 개별 교육 시간이다. 자신감이 부족한 아이에겐 냄새로 간식을 찾는 노즈워크, 주의가 산만한 아이에겐 예의범절 교육, 다리 건강이 좋지 않은 아이에겐 근육을 키우는 허들 뛰넘기. 문제점에 따라 처방은 제각각이다. 선생님이 직접 만든 간식과 타이밍을 제대로 맞춘 칭찬도 교육 효과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들 각자에게 맞는 훈련이 참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세세히 내 아이를 신경 써준다는 생각이 들 때면 유치원 오길 잘 했단 생각이 들어요" 홍시는 사회성이 부족한 강아지였다. 산책을 할 때,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강아지를 만날 때는 물론 TV에서 강아지만 나와도 월월 짖어 댔다. 특히 덩치가 큰 아이들에게 특히 겁을 먹고, 힘으로 밀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선생님은 이런 문제점을 발견하고 홍시를 즉각 다른 반으로 옮겼다. 그 덕분에 지금은 작은 친구들로 이루어진 반에 등원하고 있다.


◆ 개한테 무슨 유치원? 자식 키우는 방식일 뿐
오후 6시, 유치원의 마지막 시간이다. 강아지들은 이를 닦고 귓속 청소도 하며 주인에게 돌아갈 채비를 한다. 선생님은 강아지마다 특이사항이 없는지 꼼꼼히 체크한다. 다른 날보다 조용했던 녀석에겐 더 마음이 쓰인다고.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아쉬운지 홍시는 아직도 기운이 펄펄하다. 낮잠을 평소보다 길게 잔 덕분일까. 도시락에 담긴 사료도 싹 비웠다. 애견 유치원에는 식사시간과 낮잠 시간도 있다. 식사는 보호자가 원하는 시간에 개별 적으로 배급하는 편이고, 낮잠은 신기하게도 다 같이 누워 다 같이 잔다. 강아지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냄새가 밴 담요나 옷가지가 깔린 작은방에 들어가 잠을 청한다. 자극이 강한 바깥 놀이와 다른 강아지들에게 시달렸기 때문에 혼자 조용히 쉬는 시간은 필수다. 좀 전까지만 해도 뛰놀던 강아지들이 과연 잠을 청할까. 걱정도 잠시 놀이방은 적막에 휩싸였다.
하원하는 홍시를 안은 지원 씨가 주저하는 듯 기자 앞에 선다. "그게.. 인터뷰를 한다곤 했는데, 개한테 무슨 유치원이냐는 악플이 달릴까봐 좀 걱정도 되네요 (웃음)" 실제 '개 팔자가 상 팔자' 류의 기사에 최근 가장 자주 등장 하는 것이 '개 유치원'이다. 비용과 상관 없이 개 유치원이라는 단어에서 사람들은 벌써 혀를 끌끌 찬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개에게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 교육을 시키지 않는 무책임한 반려인 문화가 아닐까. 반려인이 관심을 갖고 잘 교육시키면 개 유치원은 굳이 보내지 않아도 된다. "유치원을 보내든, 집에서 키우든. 각자의 방식 대로 자식을 잘 키우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요?" 지원 씨는 말한다. 제 자식 홍시를 꼬옥 안은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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