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사에는 '9번 교향곡의 저주'라는 징크스가 전해지고 있다. 베토벤부터 시작된 이 징크스는 당대 최고의 작곡가들이 잇따라 9번 교향곡을 작곡한 뒤 숨지면서 생겨났다.
베토벤의 제9번 교향곡 '합창'은 걸작으로, 초연부터 대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베토벤은 제10번 교향곡을 구상하던 중 사망했다. 지병, 전염병, 자살 등 그의 사인에 대해서는 분분했지만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베토벤 사망 후 이상하게도 많은 작곡가들이 9번 교향곡을 쓰기만 하면 세상을 떠났다. 슈베르트는 베토벤과 마찬가지로 제9번 교향곡 '그레이트'를 완성한 후 열 번째 교향곡을 스케치하다가 불과 31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이때부터 '9번 교향곡의 징크스'라는 말이 생겨났다.
브루크너는 9번 교향곡을 작곡하던 중 돌연 사망했다. 브루크너는 9번이 미완성이므로 저주의 희생양에 해당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전이 있었다. 음악학자들이 브루크너가 젊은 시절 작곡한 1번 교향곡을 발견해낸 것이다. 결국 브루크너 또한 9번 교향곡을 작곡한 뒤 사망한 셈이 되었다.
드보르자크도 제9번 '신세계 교향곡'을 작곡한 직후 사망했다. '신세계 교향곡'은 원래 교향곡 제5번이었다. 하지만 드보르자크가 사망한 뒤 초기에 썼던 4개의 교향곡이 새로 발견되면서 마지막에 썼던 5번이 9번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결국 드보르자크도 9번을 작곡한 후 사망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작곡가들은 9번 교향곡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하게 됐다. 특히 구스타프 말러는 숫자 9를 두려워했다. 그는 아홉 번째 교향곡을 써야 할 시기가 되자 저주를 피하기 위해 고심 끝에 9번 교향곡에 번호를 붙이지 않고 제목만 달았다. 이것이 바로 만년의 걸작 '대지의 노래'다. 이 덕분인지 말러는 열 번째 교향곡을 완성할 때까지 죽지 않았다. 그러나 말러는 10번째 교향곡에 제9번이라는 번호를 붙이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말러 역시 그로부터 1년도 지나지 않아 9번 교향곡의 저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지병으로 사망했다.
그 이후에도 본 윌리엄스, 슈니트케 등이 9번 교향곡의 저주로 숨졌다. 글라주노프는 아예 8번 교향곡까지만 쓰고 9번은 1악장 만을 쓰다가 죽을 때까지 손도 대지 않았다고 한다.
'9번 교향곡의 저주'를 보기 좋게 깨트린 작곡가는 쇼스타코비치다. 스탈린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9번 교향곡을 쓸 시기에 즈음한 쇼스타코비치에게 자신을 찬양하는 교향곡을 쓰게 했다. 강요에 못이긴 쇼스타코비치는 기악으로만 구성된 소박한 연주 시간 25분 안팎의 '교향곡 9번'을 작곡했다. 스탈린은 화를 냈지만, 위대한 작곡가를 숙청할 수는 없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후 6곡의 교향곡을 더 작곡해 모두 15개의 교향곡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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