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어쩌다 사장’, 유호진 PD표 촌놈 예능의 묘미

tvN ‘어쩌다 사장’, 시골슈퍼 사장된 차태현, 조인성이 보여주는 것들

tvN 예능프로그램
tvN 예능프로그램 '어쩌다 사장' 포스터

똑같은 소재를 갖고 해도 보는 맛이 다른 예능을 만드는 PD가 있다. 유호진 PD가 바로 그런 연출자다. 남다른 감수성으로 단순한 체험 그 이상의 따뜻한 시골 정서를 담아내는 PD. 새로 시작한 tvN '어쩌다 사장'은 바로 유호진 PD표 '촌놈 예능'의 묘미를 보여준다.

◆시골 슈퍼의 사장님으로 열흘을 산다는 건

타인의 삶(그것도 그의 일)을 경험하고픈 욕망은 무수히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 '직업 체험'이라는 소재가 스테디셀러로 등장하는 이유 중 하나다. 멀리 보면 고전 중의 고전 프로그램 KBS '체험 삶의 현장'이 그토록 단순한 형식에도 지금껏 무수한 패러디가 나올 정도로 사랑받았고, 최근에는 유재석이 출연했던 tvN '일로 만난 사이'나 장성규가 출연하는 웹예능 '워크맨' 같은 프로그램들이 나오기도 했다. 유호진 PD가 새로 시작한 tvN '어쩌다 사장'도 바로 이 욕망을 건드린다. 시골 슈퍼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그 일을 체험하며 느끼는 소회는 무엇일까.

유호진 PD는 자신의 페르소나처럼 '1박2일'부터 '거기가 어딘데?', '서울촌놈'까지 함께 해온 차태현을 전면에 내세우고, 예능에 간간히 얼굴을 보이긴 했지만 프로그램 전체를 이끌어가는 메인 출연자로는 처음인 조인성을 그의 옆자리에 세웠다. 그리고 일종의 '알바생' 개념으로 게스트(?) 일꾼들이 참여하는데, 그 출연진의 면면이 대박이다.

박보영을 시작으로 남주혁, 박병은, 조보아, 신승환, 윤시윤 심지어 박인비 프로까지 특급 알바생들이 참여한다. 열흘 동안 대신 슈퍼를 맡아 하는 장사라고는 해도, 차태현과 조인성 둘만으로는 이야기가 단조로울 수 있다 우려했던 모양이다. 특급 알바생들이 게스트로 매회 참여하니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진짜 주인공은 강원도 화천군 원천리 버스정류장 앞에 있는 시골 슈퍼 그 자체다. 유호진 PD가 '어쩌다 사장'이라는, 어떤 일인가를 드러내지 않는 제목으로 하필이면 이 시골 슈퍼를 첫 일터이자 촬영지로 선택한 건 그 만한 강력한 매력이 존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tvN 예능프로그램
tvN 예능프로그램 '어쩌다 사장'의 한 장면. 자료=tvN

마을 초입에 자리한 그곳은 지나는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다. 오고 가며 들러 간식도 사먹고, 버스표도 사고, 점심이면 간단한 음식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저녁이면 '가맥집(가게 맥주집)'이 되어 퇴근길에 삼삼오오 모여 술 한 잔씩 기울이며 두런두런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곳이다.

그러니 이 시골 슈퍼라는 공간이 주는 정서적인 훈훈함은 별 일이 벌어지지 않아도 시청자들이 계속 바라보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이 만한 주인공이 있을까.

◆유호진 PD표 예능에 담긴 촌놈 정서의 힘

유호진 PD는 알다시피 KBS '1박2일'이 발굴해낸 연출자다. 강호동의 몰래카메라에 속은, 당시 막내 PD였던 그의 모습은 지금도 우리의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렇게 차근차근 '1박2일'에서 잔뼈가 굵어온 유호진 PD는 아마도 전국을 돌아다니는 그 프로그램이 가진 '촌놈 정서'의 힘을 실감했을 게다. '1박2일'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시절, 나영석 PD가 가장 잘 끌어냈던 것도 바로 그것이니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다양한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 조연출을 경험하던 그가 2013년 점점 색깔을 잃어가며 복불복 게임 예능이 되어가던 '1박2일' 시즌3를 덜컥 맡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당시 유호진 PD를 그 자리에 떡하니 앉혔던 서수민 PD는 그 이유로 "불쌍하게 보여서"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했지만, 그건 다른 관점에서 본 '촌놈 예능'의 정서를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어딘지 낮은 데로 향하는 그의 시선은 줄곧 줄 위에서 화려하고 아찔한 기술을 보여주는 곡예사 같은 자극보다는, 밑에서 슬픈 분장을 한 후 애써 자신을 무너뜨려가며 웃음을 주는 삐에로 같은 정서를 향해 왔다.

그가 맡았던 '1박2일'에서 가장 큰 울림을 줬던 '서울 특집'은, 빛바랜 사진 속 젊은 시절 차태현의 부모가 서 있던 그 장소에 차태현이 서 있는 사진을 병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마법 같은 '시간여행'은 굳이 멀리 떠나지 않아도, 또 자극적인 복불복 게임을 하지 않아도 시청자들을 빠져들게 해주는 '여행의 새로운 결'을 끌어냈다.

KBS 예능프로그램
KBS 예능프로그램 '거기가 어딘데' 프로그램 포스터. 자료=KBS

KBS의 자회사 몬스터 유니온으로 이적해 만든, 사하라 사막을 걸어서 횡단하는 '거기가 어딘데?' 같은 블록버스터 예능에서도 그의 이런 '촌놈 정서'는 여전했다. 그 거창한 공간에서조차 함께 걷는 이들이 주고받는 마음을 놓치지 않았으니 말이다.

tvN으로 이적해서 내놓은 '서울촌놈'은 아예 대놓고 지역의 색깔을 매력적인 개성으로 끄집어내는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특정 지역 출신 연예인이 그곳을 찾은 '서울촌놈' 차태현과 이승기에게 사투리부터 맛집, 지역 특색 등을 소개하고 자랑하는 프로그램이었으니 말이다.

'어쩌다 사장'은 그래서 이런 일련의 유호진 PD표 촌놈 예능의 흐름을 이해하고 들여다보면 결코 '어쩌다'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어쩌면 그 많은 시골들을 들여다보다 드디어 찾아낸, 자신의 색깔을 제대로 드러낼 예능을 발견했다고 할까.

tvN 예능프로그램
tvN 예능프로그램 '서울촌놈'의 한 장면

◆'어쩌다 사장'의 색다른 관전 포인트와 확장성

'어쩌다 사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건 단연 조인성이다. 지금껏 예능프로그램에 이처럼 본격적으로 출연한 적이 없어서다. 그는 이름처럼 참 인성 좋게도 슈퍼를 찾는 이들을 정겹게 맞는다. 요리를 잘 해 음식도 파는 이 슈퍼의 주방을 맡았다. 저녁이면 가맥집으로 변신하는 슈퍼에서 조인성이 명란 계란말이에 대게 라면을 끓여 내주며, 술 한 잔 기울이는 손님들과 스스럼없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보는 이들 또한 빠져들게 만든다.

하지만 진짜 '어쩌다 사장'만의 색다른 관전 포인트는 조인성이 정신없이 몰려오는 주문에 요리를 해내고 잠시 여유가 생겼을 때 차태현에게 "근데 그림은 너무 예쁘지 않아요, 형님?"이라고 말한 후 흐뭇하게 왁자지껄한 가게의 풍경을 바라보는 장면 속에 담겨 있다. 유호진 PD는 그 장면에 사장님이 슈퍼를 맡기고 떠나기 전 열흘간 이 가게를 맡아줄 초보사장들에게 남긴 손편지의 내용을 조인성의 목소리와 자막으로 담아 넣는다.

"사람들 해 먹이는 건 참 즐거운 일이에요, 고되긴 해도."

그 장면에는 이 낯선 지역에서 어쩌다 슈퍼를 맡아 운영하게 된 '서울촌놈' 차태현과 조인성이 하루를 보내며 사장님의 시선과 마음을 공유하게 되는 정서적 지점이 보인다. 사람 좋아 보이는 손님들이 제 집처럼 그곳을 드나들었다는 걸 차태현과 조인성은 단 하루를 겪는 경험으로 알아차리고, 그것은 그들을 친구이자, 이웃이자, 아들, 딸처럼 정성을 다해 대했던 사장님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말해준다.

그건 첫 날 한 손님이 다짜고짜 커피자판기 위에 왜 동전이 없냐고 묻자 어리둥절해 했던 차태현이 그 이유를 알게 되는 장면에서도 슬쩍 등장한다. 별것 아니지만 누구나 찾아와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마음껏 누리라고 사장님이 늘 동전을 커피자판기 위에 준비해뒀던 것. 그건 단지 사장님의 영업 비밀이 아니라 손님에 대한 마음이었다는 걸 초보 사장들은 하루하루를 겪으며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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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예능프로그램 '어쩌다 사장'을 제작하고 있는 유호진 PD

체험이 단지 일을 해보는 것이 아니라, 그걸 하는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라는 걸 유호진 PD는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시골 슈퍼지만 앞으로는 또 다른 공간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어쩌다 사장'이라는 프로그램의 확장성에 더욱 큰 기대를 갖게 된다. 물론 새로운 공간이라고 해도 유호진 PD 특유의 '촌놈 정서'는 지켜지길 바란다. 그 낮은 시선이 주는 따뜻한 위로를 기다리는 곳은 훨씬 더 많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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