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만 년 전 유럽. 뗀석기로 슴베찌르기용 창을 만들어 들소 사냥을 나서는 한 무리의 구석기인들이 있다. 이들은 날카로운 창으로 무장하고 서로 협력하며 사냥을 한다. 움막으로부터 먼 길을 이동해 다른 부족과 합세하고, 들소 떼를 벼랑으로 몰아 겨울을 날 식량을 확보한다.
그 와중에 족장의 아들이 들소에게 받혀 벼랑 중턱의 바위에 떨어지고, 그가 죽은 것이라 판단한 사람들은 슬퍼하며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죽지 않고 깨어난 주인공은 가까스로 절벽을 내려와 늑대를 길들이며 멀고 먼 귀향의 여정에 나선다.
이상은 2018년 알버트 휴즈 감독의 '알파'라는 영화의 줄거리다. 냉혹한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삶이 다큐멘터리처럼 리얼하고, 드라마처럼 감동적이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를 미술사적 관점에서 읽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선, 동굴이다. 영화의 주인공이 하이에나 무리를 피해 숨고 기력을 회복하는 곳이다. 구석기 시대의 미술을 논할 때 가장 중요한 곳 중의 하나가 동굴이다. 스페인과 남프랑스에서 발견된 알타미라, 라스코 동굴벽화에는 후기 구석기인들의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미술의 역사 첫 장을 장식하는 바로 그 유명한 동굴벽화이다.
벽화의 소재는 들소다. 횃불에 비친 동굴 벽면의 요철을 보며 그들은 들소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들에게 들소는 생존이 걸린 대상이니, 들소의 털 한 오라기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머릿속에는 들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한 놀라운 묘사력으로 들소를 그려냈다. 동굴은 그들에게 휴식과 제의를 위한 장소였다. 그래서였을까? 벽화의 들소 그림에는 마치 살아있는 들소를 사냥하듯 창 자국이 남아있다.
두 번째는 돌칼이다. 주인공은 뛰어난 솜씨로 돌칼을 만든다. 그런 솜씨로 구석기인들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빚어냈다. 그러나 최초의 비너스로 기록된 이 조각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약 2만3천년 전 제작된 11.1cm의 이 여인상은 가슴과 엉덩이가 과장되게 묘사되어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불린다. 얼굴과 손의 묘사를 생략해버린 이 비너스는 그들에게 조직적 사냥을 위한 다산을 의미했고, 다산은 풍요와 연결되는 간절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인공의 귀향을 도운 타투를 보자. 초행길이었던 사냥터, 그로부터 멀리 떨어진 부족마을. 그곳으로 돌아가는 길이 어린 그에겐 미로와도 같았을 것이다. 그 길을 찾게 해준 것이 바로 동굴에서 아버지가 새겨준 별자리 타투였다. 손에 새긴 타투로 밤하늘을 관찰하며 방향을 찾고, 마침내 부족이 살고 있는 움막으로 주인공은 돌아갈 수 있었다.
타투는 그에게 내비게이션이 되어준 셈이다. 어쩌면 그의 타투는 추상적인 문양으로 도구와 장신구를 장식한 기원이 아닐까? 신석기 시대 유명한 빗살무늬토기 같은 다양한 문양들 말이다.
이와 같이 미술은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간절함을 담는다. 미술을 통해 우리는 사람들의 생각과 삶과 시대를 읽어낼 수 있다.
리우 영상설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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