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면서

김병훈 서울정경부 기자
김병훈 서울정경부 기자

"결국 대구경북 시도민은 자신들의 경제, 사회, 문화적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는 정치세력에 끊임없이 투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부산경남 국민의힘 의원들의 공조로 가덕도 신공항 건설 특별법만 통과되고 대구경북(TK) 신공항 건설 특별법은 계류되자 지역 정치외교학과 A교수가 기자에게 전한 분석이다.

A교수에 따르면 국민의힘 핵심 지지층인 TK가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과 TK 신공항 건설 특별법 동시 통과에 사활을 걸었음에도, 국민의힘이 민주당과 함께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만 통과시킨 건 정치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TK의 정치적 지지와 경제적 이익 간 괴리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는 것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차치하고 TK 유권자의 일방적 투표 행태에 원천 책임이 있다는 용기 있는 지적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어쩌면 지난해 4·15 총선 때 예견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당시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와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의 TK '막장 공천'이 파문을 일으키자 지역에선 "우리가 보수의 식민지냐"는 원성이 들끓었다. TK는 보수가 어려울 때마다 버팀목이 돼줬으나 보수는 TK에서 표와 지지만 쏙 빼먹고 지역 현안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게 'TK 식민지론'의 골자였다.

그럼에도 TK는 전체 25석 중 24석을 보수 정당에 몰아줬다. 그로부터 1년 뒤 지역 백년대계의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TK 신공항 건설 특별법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부산 가덕도를 직접 찾아가기까지 했던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TK 신공항 건설 특별법에는 일언반구조차 없었다. 일부 TK 의원들이 특별법 통과를 위해 분투했으나, 두 특별법의 동시 통과가 당론으로 정해지지 않은 이상 애초 이기기 힘든 싸움이었다.

이쯤 되니 TK가 보수의 심장이라는 말은 허울뿐이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TK는 선거, 집회 등에서 국민의힘이 호출할 때 단순 동원될 뿐이지 국민의힘은 지역의 이익에 태무심하다는 이유에서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국민의힘이 TK 민심에 유독 둔감한 이유가 나온다. TK는 무엇을 해도 표가 나오는 '표밭'이기 때문이다. 막장 공천을 하든, 지역 현안에 무심하든 TK는 따 놓은 당상인데 구태여 TK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는 게 당연지사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TK는 이중 고립됐다. 한쪽은 뭘 해도 표가 안 나오니까, 다른 쪽은 뭘 해도 표가 나오니까 지역 간 이익이 충돌할 때 TK는 배제되기 일쑤다. 정치적 변수가 아닌 완전한 상수가 돼 버린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달 25일 열렸던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 속기록 일부를 소개한다.

문진석 민주당 의원(충남 천안갑)은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처럼 TK 신공항 건설 특별법에도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조항을 담아야 한다는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김천) 주장에 "부산 지역은 여론이 강했다"는 궤변을 내놨다.

실상은 TK 시도민 여론이 강하면 더 강했지 부산보다 결코 못하지 않았다. 하지만 입법 결과는 주지하는 대로다.

A교수에게 향후 전망을 묻자 우울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국민의힘 지도부가 먼저 각성하느냐 아니면 대구경북 유권자가 날카로운 시그널을 줄 것이냐가 문제인데 현재까지는 둘 다 가능성이 안 보인다"고 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면서 다른 내일을 기대해선 안 된다는 말이 있다. 과거와 똑같이 투표했으면서도 감히 지역의 발전을 바랐던 것은 아닌지 차분히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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