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단을 이끄는 일군의 젊은 작가 중 박상영, 김혜진, 이현석 작가의 작품을 보다 보면 움찔할 때가 가끔 있다. '대구', '수성구', '수성못' 등 익숙한 지명에 한 번 더 눈길이 가는 건 물론, 이들이 어쩌다 작품 속에서 쓴 사투리는 장단고저음을 되짚으며 쿡쿡거리게 한다.
이현석 작가가 첫 소설집 '다른 세계에서도'를 냈다. 표제작이자 지난해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다른 세계에서도', 2017년 중앙신인문학상 수상작인 '참(站)' 등 8편의 단편소설이 실렸다.
작가는 2017년 등단해 매년 2~3편씩 문예지에 글을 써냈다. 2~3편이 별거냐고 할지 모른다. 그는 전업작가가 아니다. 봉직의사이면서 소설가다. 문예지들의 잇단 원고 청탁은 그의 필력을 가늠하는 열쇠다.
하나 정도는 빈틈이 있을 법하지만 그게 없다. 8편 중 가장 짧은 작품인, 소설집 맨 앞에 배치된 '그들을 정원에 남겨두었다'부터 수작이다. 작품을 통해 작가는 누군지 알 만한 사람을 오토픽션이라는 미명하에 그대로 드러내도 되는지 묻는다. 비밀이 유지돼야 할 사생활들이 목적을 위해 까발려지는 것이 옳으냐는 물음이다. 지난해 우리 문단에 휘몰아친 오토픽션 논란이 겹친다.
점입가경의 절경처럼 소설집은 1959년작 김산호의 슈퍼히어로 만화를 소재로 삼은 '라이파이', 탈북 의사의 코로나바이러스 체험과 우리의 일그러진 우월주의를 소재로 한 '부태복',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미술 작품을 소재로 한 '컨프론테이션'까지 순도 높은 몰입감으로 독자를 몰고 간다.

추리소설이 아님에도 긴장감도 높다. 마지막 작품인 작가의 등단작, '참(站)'에서도 이어진다. 인정 욕구와 모멸감 사이의 감정에 갇힌 작품 속 화자가 교도소 내 철창과 철창 사이의 공간인 '참(站)'에 일시적으로 갇힐 때는 독자도 함께 갇혀 뭐가 옳고 그른지 방향을 잃는다. 중국어로 '정거장'이라는 뜻의 그 글자에는 마침맞게 '우두커니 서다'는 뜻도 있다.
실로 다양한 소재다. 엄밀히 말해 일간지 사회면 기사가 모든 작품에 하나씩 들어가 있다. '기억이란 대부분 망실되어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마련이지만, 어떤 기억은 볕이 들지 않는 곳에서 오랜 세월을 견디다 한순간에 깨어나버리고는 한다'는 작가의 표현처럼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거의 잊힌 것 같던 사건사고들이 일순간 부상한다.
생활동반자법이, 태안화력발전소 사고가, 조두순 출소가 빵빵한 부력으로 떠오른다. 시대를 반영하는 리얼리즘 작가라 명함을 파줘도 무리가 아닐 만큼이다. 데뷔작에 덕담처럼 넉넉한 주례사식 추천을 얹어주는 문단의 풍토가 있다 해도, 동시대 젊은 작가인 소설가 박민정도 이 점을 콕 찍어 말했다.
그는 "겹겹의 내러티브에는 오늘내일만 보는 감각으로는 절대 유지할 수 없는 작가의 집념이 서려 있다… 작가가 내놓은 첫 번째 작품집은 사건이다. 이 작품집은 새로운 계보의 리얼리즘을 촉발할 것"이라 추천사를 올렸다.

이현석 작가는 이 소설집 이전에 공중보건의 시절이던 2013년 여행에세이를 쓴 적이 있다.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스페인에서 인도까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지역출판사인 한티재가 펴냈다. 제법 많이 읽혔다. 본지에서도 대문짝(2014년 4월 19일 자 매일신문 12면)만 하게 그를 다룬 적이 있다. 책도 책이지만 꼴찌들에게 희망을 주는 입시 전설로 더 크게 부각됐다.
이현석 작가를 입시 전설로만 보는 건 매우 안타까운 참사다. 그가 '나는 어떻게 전교 200등에서 의대에 갔나'를 책으로 써내지 않고 '다른 세계에서도'를 쓴 까닭은 이번 소설집 속 단 한 편만 읽어도 손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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