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다시,사투리] ②예술속 사투리-6. 어설픈 사투리 영화에 대한 유감

'찰진 맛' 못 살리는 배우들의 사투리 연기

영화
영화 '위험한 상견례' 중 한 장면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사투리 영화는 늘 조심스럽다. 사투리가 지역성을 나타내고, 캐릭터의 성장 환경을 가늠하는 도구로 쓰였기 때문이다. 부산 사투리 다르고, 대구 사투리 다르고, 경북도 그 안에 북부냐 남부냐에 따라 미세하게 다른 것이 사투리다.

이를 잘 소화해 낼 배우도 많지 않다. 더구나 최근 젊은 배우들은 사투리를 모르고 살아, 사투리 구사가 쉽지 않다. "캐릭터에 몰입하면서 사투리를 쓰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배우들은 토로하기도 한다. 교과서처럼 암기하기에 '찰진 맛'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과장된 사투리 연기로 비난을 받는 경우도 많지만, 지난해 개봉한 '이웃사촌'(감독 이환경)은 1985년 동교동 자택에 가택연금을 당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하면서 사투리를 쓰지 않아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 영화의 초고는 사투리로 쓰였지만, 대구 출신인 오달수 배우가 '어쭙잖게 전라도 사투리를 하다가 정확한 메시지나 감정을 표현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고, 감독도 이를 받아들여 사투리 버전을 삭제했다는 것이 속사정이다.

그러나 이는 치명적인 선택이었다. 아주 특별한 인물을 이웃 동네 아저씨로 일반화시켜 코믹한 일면만 취하려는 태도는 관객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치열한 주제의식 없이 흥행적 요소에만 목을 맨 것이다.

영화
영화 '위험한 상견례' 중 한 장면

◆사투리를 상업적으로 희화화

사투리를 상업적 의도로 희화화한 영화 중 하나가 '위험한 상견례'(2015)였다.

경상도 아가씨와 전라도 총각의 결혼 대작전이 콘셉트다. 광주에 살고 있는 순정만화 작가 현준(송새벽)과 부산에 살고 있는 귀여운 여인 다홍(이시영)이 사랑에 빠진다. 펜팔로 시작된 만남은 어느덧 둘을 갈라놓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그러나 현실의 벽이 버티고 있으니 "경상도? 꿈도 꾸지 마라!" "죽어도 전라도는 안돼!"라는 양가의 반대다.

이 영화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깊은 지역감정을 소재로 유쾌한 대화합을 꿈꾸는 영화다. 그러다보니 코믹한 상황 묘사가 대부분이다.

부산 구멍가게에서 껌 한 통을 사려다 "죄다 롯데껌이네. 아짐(아줌마), 해태껌 없어?"라고 묻는 장면 등 지역적 특성을 이용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진다. 또 다홍의 아버지(백윤식)가 "뭐 어때? 전라도만 아니면 되는데?"라거나 순정만화의 우스꽝스런 캐릭터, 질펀한 욕설 등 곳곳에 웃음 코드를 배치했다.

그러나 과도한 에피소드들이 몰입을 방해하고, 자연히 뒤로 갈수록 웃음의 농도도 떨어진다. 다홍의 엄마 춘자(김수미)가 그동안 전라도 출신임을 숨긴 채 살아왔다거나 양가집 아버지가 오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등 갈수록 늘어지는 이야기도 흠이다.

◆정체불명 경상도 사투리 대사

특히 어색한 것이 배우들의 경상도 사투리 연기다. 사투리는 이 영화의 생명이다. 그러나 아버지 역의 백윤식 씨는 사투리를 캐릭터에 녹여 넣지 못한다. 심지어 전화를 받을 때 '여보세요?'라는 대사마저 어색하다.

경상도말은 앞말에 강한 악센트를 담아낸다. 반대로 서울말은 뒷말이 올라간다. 경상도 사람이 서울말 흉내 낼 때 끝말을 올리는 코믹한 상황이 그래서 나온다.

전화 받을 때 '여보세요'는 경상도 아버지라면 '여'에 강한 악센트를 주면서, '보세요'는 끌려오도록 흐리게 발음한다. 경상도 사투리의 투박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백윤식 씨는 서울말에 투박한 맛만 부각시킨 정체불명의 '여보세요'를 내뱉는다. 뒷부분에 악센트를 주는 바람에 '여보세용?'에 가깝게 발음한다.

대사가 자연스럽지 않다보니 캐릭터가 어색해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것이 흠이다.

다홍 역의 이시영도 마찬가지여서 튀기만 할 뿐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오빠야~' 처럼 경상도 아가씨 특유의 애교를 뽐내는데, 부산 아가씨가 아닌 대구 아가씨의 악센트에 더 가깝다. 이는 통상적으로 귀여운 경상도 아가씨를 대표하는 것이 대구여서 이를 연기한 것이다.

특히 부산사투리를 구사하면서 대부분 연기자가 '결혼'을 '갤혼'이라고 발음하지 않는 것은 이 영화의 부산 사투리 설계가 잘못된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다홍도 말투만 사투리처럼 들리지 시종일관 '결혼'이라 발음한다.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는 'ㅕ'를 'ㅐ'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형님이 현금이 없어 결혼을 못한다'는 '행님이 행금이 없어 갤혼을 몬한다'로 발음된다.

◆서울 출생 배우의 경상도 사투리 흉내

장준환 감독의 '1987'에서 박종철의 시신 부검을 본 삼촌(조우진)이 기자들을 향해 오열하며 "갱찰이 죽있심더! 갱찰이 죽있심더!"를 외치는 짧은 장면이 있다. 부산에서 올라와 주검을 본 삼촌이 경찰의 고문으로 조카가 죽은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이 장면에서 '경찰'이라고 발음하지 않고 '갱찰'이라고 부산식으로 발음한다.

'위험한 상견례'는 사투리가 생명인 영화인데 이런 기초적인 부분까지 놓친 것이다. 원인은 지역 출신 배우가 아니라는 것이 가장 클 것이다. 백윤식은 서울 출생이고, 이시영은 충북 출신이다. 그러다보니 대사를 흉내 내거나 외우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복서 출신 이시영은 이 영화를 마치고 "권투보다 더 힘든 것이 사투리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전라도가 고향인 김수미, 박철민, 송새벽은 서로 연기 코치도 해주며 즐겁게 촬영했지만, 백윤식과 이시영은 쉬는 시간마다 이어폰을 끼고 사투리 연습에 몰두했다고 한다.

'위험한 상견례'는 다홍의 엄마 춘자(김수미)가 가출하면서 "전라도가 나라를 팔아먹었냐?"며 욕하는 등 두 지역의 갈등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이런 대의는 어설픈 코믹함과 얄팍한 상혼(?)에 묻혀 버리고, 두 지역의 갈등적 상황을 웃음거리로만 엮어내는 것에 불편하기만 한 사투리영화였다.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이 기사는 계명대학교와 교육부가 링크사업으로 지역사랑과 혁신을 위해 제작했습니다.

◆다시, 사투리 연재 순서

1.왜 다시, 사투리 인가

2.예술 속 사투리

3.사투리와 사람들

4.외국의 사투리 보존과 현황

5.대담

◆사투리 연재 자문단

김주영 소설가

안도현 시인

이상규 전 국립국어원장

김동욱 계명대학교 교수

백가흠 계명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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