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경철이 만난 사람] 이재명 경기지사 "공직자 가장 큰 덕목은 공정"

LH 사태…불공정 횡행하면 결국엔 나라 망해, 검찰·감사원 총동원 처벌·책임을
윤석열 콘텐츠는 수사뿐…모든 수사 공정하게 했는지 의구심
지역화폐형 기본소득…지역 전자화폐 13조 푸니 100조 효과
지방자치 민주적 통제 부족…균형발전 위해 장기 투자·배려해야
경북도민의 노래 기억하는 안동 예안 출신…소년공→사시합격→경기지사까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매일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무성 객원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매일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무성 객원기자.

자리에 앉아 첫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이재명(56) 경기도지사는 고향 안동에서의 어린 시절 얘기부터 꺼냈다. 그러면서 "초등학교 운동회 때마다 들어서 아직도 가사를 정확하게 기억해 부를 수 있다"면서 '경북도민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이 노래를 들어봤냐고 기자에게 묻기도 했다.

각종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이 지사와의 대화는 그의 어린시절부터 소환돼 시작됐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가족 모두 경기도 성남으로 떠났다고 했는데, 오랜 객지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에는 경상도 사투리가 꽤 많이 배어있었다. '그래서' 대신 '그래가'를 쓰기도 했다.

10일 오후 약속된 인터뷰 시간을 훌쩍 넘기면서 진행된 인터뷰 내내 그는 기자와 눈을 계속 맞혀가며 말을 이어갔다. 그의 책상 위에는 참고자료 한장 없었고, 사전에 질문지를 주기는 했지만 질문지에 없는 내용을 물어도 머뭇거림없이 즉답을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이 지사의 별명이 왜 '사이다'인지 알 것 같았다.

- 고향이 안동이라고 들었다.

▶고향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녔다. 안동 예안면 삼계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하고 경기도 성남으로 왔다. 지금도 1년에 2번, 한식, 추석 때는 꼭 고향에 간다. 3대 선대 묘가 봉화와 영양, 안동에 걸쳐 있다. 왜 흩어져있냐하면 3개 시군의 꼭지지점이 내 고향이다. 봉화에는 부모님 묘소가, 안동에는 할머니 묘소, 영양에는 할아버지 묘소가 있다.

- 고향을 등지고 왜 성남으로 갔나?

▶먹고살기 어려워서 그랬다. 원래 소작을 했었다. 산전을 일궈서 초근목피로 살 때다.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끼리 모여야 살 길 열린다고 해서 성남으로 갔다. 내가 초등학교 졸업하는 때에 맞춰서 가족 모두(그는 5남 2녀 중 다섯째) 성남으로 터전을 옮겼다. 초등학교 다니던 동생 둘은 성남의 학교로 전학을 했고, 나부터 위로는 모두 공장으로 취업했다. '공원모집 00명' 이런 사원 모집 광고가 전봇대에 많이 붙어있던 시절이었다. 내 첫 직장은 여성 목걸이 만드는 납땜공장이었다. 이후 고무공장, 냉장고 공장, 야구글러브 공장 등에서 일했다. 야구 글러브 만드는 공장에서는 프레스 작업 도중 팔도 다쳤다. 마지막 직장이 오리엔트 시계 공장이었다.

- "나는 왜 이렇게 공장을 다녀야 할까?" 이런 한탄 안해봤나?

▶그 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다. 주변이 다 그랬다.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였다. 부모님에 대한 원망도 없었다. 학교가는, 교복 입은 애들이 부러웠던 적은 있다.

- 공장에 다니다가 공부는 왜 하게됐나?

▶공장에 다닐 때 고참 관리자들에게 엄청 많이 맞았다. 폭력이 스포츠처럼 돼 있었다. 군대 문화가 직장으로 고스란히 이어져있었다. 냉장고 공장 다닐 때는 군복 입은 관리자가 애들을 길들인다고 이른바 '빠따'를 때리고 퇴근할 때도 때리고 그랬다. 관리자가 되어서 편하게 살아보자는 마음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일단 안 맞는게 목표였다. 그 곳을 탈출해야했다.

- 공부가 쉽지 않았을텐데?

▶엄청나게 했다. 누워 자지 않고 독서실 책상에 엎드려서 4, 5시간 눈을 붙이는 것이 수면일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검정고시로 1978년 중졸 자격, 1980년에 고졸 자격을 각각 획득했다. 대학은 82학번이다. 정말 죽어라고 했다. 학력고사 287점 맞았다. 서울대도 법대 말고는 다른 모든 과에 들어갈 수 있는 성적이었지만 중앙대 법대에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돈이 없으니 돈을 주는 곳으로 가야했다. 등록금도 줬고, 추가로 매달 20만원을 받았다. 마지막 공장이었던 오리엔트시계 공장 월급이 7만원이었으니 엄청나게 큰 혜택이었다.

- 사법고시는 왜 보게됐나?

▶대학 들어갈 때는 사법고시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 대학 들어가 보니 고시에 대한 이야기를 선배들이 했다. 시험보는 것은 자신이 있었다. 내가 장애인인데, 그 때는 장애인 취업이 어려웠다. 그래서 사시공부를 열심히 했다. 역시 하루에 4, 5시간만 자면서 공부한 끝에 졸업하던 해, 사시에 합격했다.

- 사시 합격해서 변호사 됐으면 돈을 많이 벌 생각도 했을텐데, 왜 노동인권 변호사의 길을 걸었나?

▶대학 다닐때 '나도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사법연수원 있을 때도 왜 유혹이 없었겠나? 마담뚜 통해서 만난 사람도 있다. 그 중에 대구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잘 안 맞더라. 지금 아내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돈 많이 벌 궁리를 안하니까. 그런데 내 아내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놓치고 싶지 않아서 도박을 했다. 내 일기장을 줬다. 나는 10년 넘게 일기를 썼다. 검정고시 시작할 때부터 내 삶을 기록했다. 매일 돌아보고 각오를 세웠다. 이 일기장을 아내에게 줘서 보여주고 마지막 도박하는 심정으로 아내가 일기장을 보고 난 다음에 결혼하기로 했다. 나라고 돈에 대한 개인적 욕망이 왜 없었겠나? 그러나 그 개인적 욕망을 누를 만큼의 동기가 있는 것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매일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무성 객원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매일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무성 객원기자.

- 최근 LH사태에서도 그렇듯 공정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크다. 내년 대선의 시대정신이 될 수도 있을텐데?

▶공정성이 개선되긴 했는데 LH사태를 보면서 부족함을 느낀다. 공직자의 가장 큰 덕목은 공정이다. 공직자는 권력을 위임한 국민에게 합당하게 권력을 행사해야 하고, 그 핵심이 공정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공정함이 살아 있던 시대는 나라도 살아 있었다. 공정의 룰이 깨지면 불평등이 심화하고 양극화된다. 자작농이 소작농으로, 그 다음은 소작농에서 종으로 전락하고 그 후에는 결국 도적이 되는 것이다. 나라가 망한다. 우리는 정부 수립 100년도 안 됐는데 나라 말기처럼 불공정이 횡행하고 있다. LH사태는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는 땅 사면 안 됩니까"라는 항변도 나오든데 당연히 관리하는 사람은 땅을 사면 안 된다. 불공정의 대표적 사례다. 국가가 권력을, 검찰, 감사원 등 모든 가용수단을 총동원해서 대대적으로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 싹을 잘라야 한다. 처벌할 일이면 처벌하고, 약하면 징계하고, 그보다 약하면 윤리적 책임이라도 지워야 한다. 조사를 대대적으로 해야 한다.

- 닮고 싶은 지도자가 있나?

▶삶의 태도는 김구 선생을 닮고 싶다. 그리고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재임 1933~1945년) 대통령을 좋아한다. 뉴딜을 했던 매우 실용적인 사람이다. 뉴딜이라는 전례 없던 정책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의 50년 호황을 만들어냈다. 전환의 시대에는 발상의 대전환, 그리고 혁신적 사고,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내가 그러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중국 당나라 때 태종 이세민도 닮고 싶은 사람으로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당나라의 국가 토대를 만든 사람이다. 이세민은 반란을 일으켰던 동생의 책사였던 위징(魏徵)을 기용했다. 위징은 쓴소리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이세민은 한술 더 떠 위징이 쓴소리를 할 때마다 상을 줬다. 부하나 참모는 리더가 듣기 싫은 소리를 잘 안한다. 이렇게되면 왕조가 망하는 징조다. 권력의 근처에 있는 사람은 싫은 소리를 마땅히 해야 한다.

- 최근에 권력에 대해 '쓴 수사'를 하다가 옷을 벗고 나온 사람(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있는데?

▶국민이 선택할 일이다. 국민의 선택은 바람같은 측면도 있고 도도한 흐름도 있다.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 국민의 뜻에 부합하게 실적을 쌓아나가면 세력이 확대되는데, 관심을 받다가 내용이 아니면 숙질수도 있다. 본인이 하기 나름이다. (윤 전 총장이) 보여준 콘텐츠라곤 수사밖에 없다. 수사도 정의를 추구했다고 하는데 선별적 정의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이것이 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수사를 공정하게 했는지 의구심이 있다. 대의민주주의는 정치 시장이다. 어떤 대리인이 합당한지 고르는 시장이다. 시장에선 공정이 중요하다.

- 기본소득 정책의 전도사다. 이를 주장한 배경은?

▶내가 살아온 경험, 그리고 연구와 공부의 합체다. 지금은 저성장이 문제다. 성장을 못해서 갈등하고 출산하지 않으려 하고, 경쟁이 격화돼 각자도생의 길을 간다. 일정한 성장을 해야 갈등도 줄어들고 재원도 마련된다. 그럼 어떻게 성장하느냐? 내 고민의 최종 결과물이 기본소득, 그리고 지역화폐다. 재정지출을 하면서 최대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방식을 찾은 것이다. 10여년동안 행정가로 있으면서 재정 집행하는 과정에서 내린 결론은 재정지출을 늘려 가계소득을 직접 지원하면 소비로 이어지면서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낸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지난해 보편적 지급을 통해 재난지원금을 전국민에게 지급했는데 13조원 정도 들었다. 1년에 2번 지급하면 26조원 정도 든다. 만약에 1년에 4번 준다면 50조원 정도면 된다. 조세감면이 지금 60조원 가까이 된다. 조세감면을 순차적으로 조금씩 줄이면 재원 마련이 충분히 가능하다. 조세감면 사라져서 불만 가지는 사람보다 기본소득을 받아서 이익을 보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반발할 일이 없다. (그는 기존 제도를 조금만 조정하거나 예산구조조정을 통해 국가가 빚을 내지 않고도 충분히 기본소득 제도를 운용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 지역화폐 효용론 주창자인데?

▶일본이 경제를 살리려고 현금을 풀었더니 국민들이 돈을 전부 장롱속에 넣어버렸다. 현금으로 주면 시장에 돈이 안 돌아다닌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정 기간 동안 쓰게 만들어야 한다. 지난해 보편적 재난지원금 지급 과정에서 보지 않았던가? 지역 전자화폐를 3개월 안에 쓰게 했더니 모두 다 사용했다. 13조4천억원을 재정으로 풀었는데 효과가 100조원 쓴 것과 같이 나왔다. 효율성이 중요하다. 선별지원이었던 2, 3차 재난지원금은 어땠나? 현금으로 더 많이 지원했는데 더 많은 돈을 풀었건만 경제효과는 더 적었다. 심지어 현금으로 지원받은 소상공인들이 "우리에게 현금을 주지 말고 국민들에게 줘서 매출을 올려달라"고 외쳤다. 지역화폐로 줘서 동네 통닭집 장사 잘되면 생닭도 더 사고, 알바생 고용도 더 하고, 배달 늘어나니 오토바이도 한대 더 산다. 몇 배의 경제효과가 나타난다. 그래서 나는 '지역화폐형 기본소득'을 강력하게 추구한다. 이래야 지속가능한 성장이 된다.

- 지방자치 현장을 오랫동안 지켜왔다.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나?

▶민주적 통제 시스템이 많이 부족하다. 지역민들이 단체장에 대해 충분히 통제하지 못한다. 성남시장, 경기도지사하면서 주민들의 관심도를 높이는데 전력을 기울여왔다. 말만 한다고 되나? 시정과 도정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체험을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단체장 잘 뽑으니까 내 통장에 돈이 생기고, 어린이집 가면 간식도 좋아지고, 세금 더 많이 낸 것도 아닌데 단체장을 잘 뽑아놓으니 내 삶이 더 윤택해지고 있다는 체감도를 높여주는 것이다. 머슴을 잘 뽑아 관리를 하면 떡이 돌아온다는 선례를 남겨야 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매일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무성 객원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매일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무성 객원기자.

- 자치와 분권의 더 나은 발전을 위한 제도적 개선점은 없을까?

▶우리나라 자치분권의 강도가 약하다. 우리나라는 수도권에 너무 많이 집중돼서 국가 전체적으로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다. 균형발전이 가능하도록 지방 분권을 하려면 저항이 있다. 현 상태로 이익을 보고 있는 수도권 주민의 반발이 있다. 이 반발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묘목을 이식하면 금방은 잘 자라지 않지만 자리를 잡으면 잘 크듯이 현재 상태에서 단기적으로 손실이 오는 것 같아도 장기적으로 균형발전에 대한 투자와 배려가 중요하다. 이런 식으로 수도권으로 집중되면 나라가 망한다. 지방을 살리기 위해 농촌 기본소득도 필요하다. 지역화폐로 소득을 올려주는 것이다.농촌에서 가족 3, 4명에게 한달에 50, 60만원 정도 사망할때가지 소득을 보장하면 당연히 귀향한다. 지방을 살리는 길이다. 질적으로 바뀐 사회에서는 질적으로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 국가경영을 하기 위해 결심을 한다면 언제쯤일까?

▶모르겠다. 끊임없는 고민거리다. 어떤 일을 맡겼더니 효율과 실적을 내는구나, 이런 판단을 하면 국민들이 큰 역할을 부여하려고 할 것이다. 맡겨진 일에 성과를 내는 것이 국민의 평가를 받는 것이다. 일단은 도정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다. 결국 신뢰가 중요하다. 과거와 실적에서 신뢰가 온다. 과거 없이 미래를 판단할 수는 없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다. 과거를 잘 만들어야 한다.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나? 그렇다고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니다. 공부와 연구, 토론 많이 한다. 언제나 갈고 닦고 있다.

- '즉흥적이다' '거칠다' 등등 악평도 많은데?

▶잘못된 것이다. 나는 속이지 않고, 기민적인 정치 언어를 잘 안 쓰고, 억지로 포장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기성 정치인들이 썼던 언어와 행동을 보이지 않으니 나를 싫어하고 엉뚱한 평가를 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즉흥적이라고? 나는 매우 신중한 사람이다. 대안을 모색하고 보완제를 마련해놓으려고 고민을 엄청나게 한다. 그 대신에 일단 정책을 결정한 후에는 집행속도를 빨리 할 뿐이다. 지지부진하면 안된다. 그래서 신속하고 강력하게 집행하는 것이다. 내 성격을 내 스스로 평가한다면 꼼꼼하고, 내성적이고 소심한 편이다.

◆이재명

중앙대 법대 졸업

성남시장 (재선)

민주통합당 기초자치단체장 협의회 의장

제19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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