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신축년(辛丑年) 정월 초엿새 날 축시(丑時)에 엄마가 돌아가셨다. 막내인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지만 수업 시간 내내 온통 엄마 생각만하는 불안정한 엄마 바라기였다. 11남매 막내로 늦게 태어난 아들이 측은하다며 엄마 치마폭 사랑으로 자랐다. 초등학교 1학년까지도 학교 갔다 대문 박차고 들어와 "엄마 젖"하고 소리치면 엄마는 하든 일손 접고 젖부터 주어 생떼를 막아야 했던 별칭 대장이었다.
엄마는 한쪽 수족이 마비돼 발음도 어둔한 중풍 환자였다. 막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혈압으로 쓰러지셨다. 혼자서는 용변도 보기 어려웠다. 용변을 보기 위해 아무리 애를 써도 요강 위에 올라앉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막내의 도움이 절실하였다.
방과 후 귀가해 오면 엄마의 방은 온통 난장판이었다. 소피를 참지 못해 엄마 혼자 요강과 씨름하다가 넘어져 이불과 방바닥은 한강이 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수족이 마비돼 죽쳐진 엄마를 요강 위에 앉히기는 11살 힘으론 버거운 상태였다.
2년여 동안 잠자는 나를 깨워 소변을 보았다. 요강과 같이 나뒹굴어져 한밤에 북새통을 치른 적이 많았다. 엄마는 온 힘을 다하여 목청껏 나를 부르다가 혼절하셨다.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이틀 만에 돌아가셨다. 모두 내 탓으로 엄마를 일찍 돌아가게 된 죄책감에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
엄마는 자식을 앞세워 가슴에 묻은 자식이 다섯이나 된다. 천연두 전염병으로 떠나보내야만 했고, 질병 재발로 끝내 구하지 못했다. 열 명이 넘는 그 많은 자식 낳는다고 고생하신 우리 엄마, 먼저 보낸 자식들 생각에 시름이 깊었지만, 남은 자식 육 남매를 위해 그렇게도 애지중지하시던 어머니는 아까운 56세의 나이에 이 세상을 홀연히 떠나셨다.
매일 밤 엄마 꿈을 꾸었다. 하루는 엄마가 "무근아 대문 열어라!" 소리에 잠결에 반가워 "잠깐만 기다려" 답하며 맨발로 후다닥 뛰쳐나갔다. 마당이 넓어 대문도 멀었다. 큰 대문이라 발로 밀어 반동으로 문고리를 열었다. 세찬 바람에 밀려 대문이 활짝 열렸으나 나를 불렀던 엄마는 없었다. 매일 밤 엄마를 그리다가 헛꿈을 꾼 것이다. 그날이 정월 대보름날 축시였다. 혼자서는 무서워 못 가는 재래식 변소가 옆에 있어 가물어졌다. 그날부터 우울증으로 앓아누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10살 때 엄마는 모래 뜸질을 좋아하셨다. 유독 팔달교 모래사장을 선호하셨다. 50여 년이 지난 이른 봄 팔달교 강변 둑으로 조깅하고 있었다. 이게 웬 일인가. 혁대 같은 흑 구렁이 한 마리가 길을 막고 있었다. 방금 올라온 듯 윤기가 나고 날름거리는 혀 반짝이는 눈이 순식간에 마주쳤다. 피해야 한다는 반사적 행동으로 우회하여 속보로 걸었다. 무서움은 커녕 그 뱀의 눈길이 심상치 않아 뒤를 돌아다 보니 어느새 보이질 않았다. 혹시 엄마가? 뜬금없는 생각이 스쳤다. 20초도 채 되지 않았다. 분명히 그 자리였다. 순식간이지만 영롱한 눈빛으로 교감은 있었던 것 같다.
엄마의 간청이 하늘에 닿아 뱀의 형상의 배려라도 막내를 보러 왔을까? 먼 길 떠나시는 날까지 노심초사했던 막내를 보러 왔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어리석은 생각이겠지 하면서도, 그 이후에도 틈만 나면 팔달교 아래 난간을 걷는다. 흑 구렁이라도 좋으니 한 번만 더 나타나 주기를 바람는 마음과 설렘 때문이다. 갑자(甲子)를 돌아 60년 전 신축년 정월 초엿새날 오늘이 바로 엄마 기일 날에 삼배 두건을 쓴 엄마 바라기였던 나를 더듬어 본다.
그립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유무근 시니어매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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