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리(12Y·말티즈·2.8kg)가 내원했다. 보호자가 툴리를 내려놓자 무언가에 홀린 듯 진료실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보호자가 이름을 부르면 잠시 고개를 돌리는가 싶더니 배회하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보호자는 지난해까지도 영특했던 톨리가 몇 달 사이 산책도 힘들어하며 며칠 전부터는 온종일 집 안을 배회하고 있다고 하셨다.
반려견의 수명은 과거에 비해 확연히 늘어났다. 과거에 드물었던 종양질환, 퇴행성 만성질환, 치매 등의 노령견 질환이 증가하는 것도 수명의 연장과 관련이 있다.
톨리의 이 같은 증상은 개 치매(CCD·Canine Cognitive Dysfunction)로 진단되었다. 개의 인지장애 또는 개 알츠하이머병이라 부르기도 한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데이비드 동물행동 클리닉(Clinical Animal Behavior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Davis School of Veterinary Medicine)의 Melissa Bain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1~12세의 개 28%가 치매 징후를 보이며, 15~16세가 되면 개의 68% 정도에서 치매가 나타날 확률이 높다고 한다.
◆개 치매(CCD)의 원인
개 치매(CCD)는 도파민이라는 신경 전달 물질의 고갈과 관련이 높으며, 뇌위축증과 알츠하이머병에 의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원한 개의 치매(CCD) 발생 원인을 정확하게 감별해 내기는 쉽지 않다. 사람은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설명할 수 있으며 뇌파검사와 MRI 검사를 쉽게 활용하는 편이지만, 개는 보호자의 검사 의지가 선행되어야 하다 보니 MRI 검사마저도 활용되기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개 치매(CCD)의 유형
워싱턴 주립 대학 동물과학부의 Leticia Fanucchi 박사는 CCD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Involutive depression(만성 우울증) – 사람의 만성 우울증과 유사하며 불안해한다.
Dsythymia(지속되는 우울증·PPD) – 혼란, 방향 감각 상실, 자기 신체에 대한 인지 결여
Hyper-aggressiveness(과잉 공격성) – 뇌의 세로토닌(행복 호르몬)의 결여로 인한 공격성 증가
Confusional syndrome (혼란 증후군) – 인지 기능이 현저히 악화(알츠하이머병과 유사)
◆개 치매(CCD)의 증상
물건 흩트리기, 좋아하던 물건에 대한 애착 감소, 불규칙한 수면, 활력 감소, 배뇨·배변 실수, 식욕 감소 또는 항진, 벽 보고 서 있기, 교감 능력 저하, 이유 없이 짓기, 공격성, 배회하기, 선회운동, 방향 상실 등 치매의 정도와 노화, 불안, 호르몬 등의 영향을 받으며 다양한 증상으로 관찰된다.
◆개 치매(CCD)의 진단
수의사는 개의 증상을 관찰하고, 보호자와의 문답식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개 치매의 정도를 평가한다. 노화와 여타 다른 질병으로 인해 유사 증상이 나타났는지를 감별하고자 혈액검사와 영상진단 검사를 하기도 한다.
개 치매검사(CADES) 서식을 통해 개의 치매 정도는 정상적인 노화, 경도 인지장애, 중도 인지장애, 심도 인지장애로 구분한다.

◆개 치매(CCD)의 치료와 예방
인간 치매에 적용되는 여러 약물이 개 치매 약물로도 개발되어 있다.
California Pet Acupuncture and Wellness(CPAW)의 Patrick Mahaney 교수는 항산화와 항염 효과가 있는 Silybin, S-Adenosyl Methionine (SAMe), omega 3와 omega 6, Vitamin E. 가 도움 된다고 소개한다.
치매 증상을 지연시키며 예방에도 도움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성분들을 함유한 영양제와 간식들이 시판되고는 있지만 주의할 점이 있다. 이 성분들은 공기와 접촉하면 쉽게 산패되는 성분들이므로 원료의 함량과 순도, 그리고 유통 과정에서의 안전성을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섣불리 영양제를 선택하다 보면 오히려 변패된 지방이나 과량의 보존제가 함유된 불량 식품을 제공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반드시 수의사와 상담하여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개 치매(CCD) 환자의 관리
이미 치매 증상이 발현된 개에게 이상 행동을 교정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개를 더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미 이상 행동 자체가 개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므로 보호자는 개를 안정시키고 반복적인 이상행동으로 인해 상처나 통증이 생기지 않도록 배려해 줄 필요가 있다.
아침 저녁 햇살을 받으며 가벼운 산책이나 실내 운동을 시켜주면 Serotonin 분비를 촉진시킨다. 낮부터 저녁 시간까지는 좋아하는 간식을 이용한 노즈워크(탐색놀이)를 유도하여 자연스럽게 운동량을 증가시켜준다. 밤에 잠이 들게 하고 수면의 질을 높여준다.
개 치매 환자의 식이 또는 영양제 처방은 노화, 만성질환, 현재의 건강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택되어야 하는 만큼 반드시 수의사의 검진을 받으신 후 처방받으셔야 한다.

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한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