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멋대로 그림읽기]이창효 작 '자두-풍요'

이창효 작 '자두-풍요' 193.9x112cm .Oil on canvas

대개 신화 속 등장인물이나 상징성은 시대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확정되거나 보다 구체화되는 특성을 갖는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데메테르'를 생각해보자. 올림푸스 산 12신 중 한 명으로 밀 이삭으로 된 관을 쓰고 손에 곡물이나 횃불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이 '대지의 여신'은 상징성과 이미지가 확장되는 신화 속 속성에 맞춰 점차 땅의 생산력을 관장하는 '풍요와 곡물의 여신'으로까지 의미 영역을 넓혀갔다.

내친 김에 대지가 지닌 상징성을 더욱 확장시켜 보면, 풍요로움을 생산하는 대지는 끊임없는 재생력을 지녀야 한다, 재생력은 또한 치유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재생산이 불가능하므로 치유력도 대지의 속성이 된다. 이렇듯 대지와 풍요, 풍요와 재생력, 재생력과 치유력으로 이어지는 의미의 확장은 모두 땅이 품은 상징적 의미로 도출된다. 게다가 이 모든 능력을 합한 넉넉한 덕성은 어디로 귀결될까? 바로 어머니의 품이다.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어시고…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녘의 빛을 주시어…포도주에 마지막 단맛이 길게 스미게 하소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 시어처럼 '포도주에 길게 스민 단맛'이 물씬 풍키고 한입 베어물면 상큼하면서 달콤한 과즙이 입안을 잔뜩 물들일 듯 자두의 향연을 펼쳐 놓은 게 이창효 작 '자두-풍요'이다.

캔버스 위에 한지를 덧바르고 유화로 자두를 화폭에 담은 이 작품은 이른 아침 이슬을 한껏 머금은 채 막 밭에서 수확한 듯이 싱싱하고, 당도를 표현한 뽀얀 분의 묘사가 뛰어나다. 특히 화면의 우측 상단에서 좌측 하단으로 비스듬하게 푸른색의 자두 잎을 끼워 넣어 빨간 자두와 함께 구성함으로써 보색대비의 효과로 자두의 싱싱함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덧붙여 화면 전체에 자두가 품은 몸서리쳐질만한 단맛과 싱싱함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오랜 시간 섬세한 붓질의 공을 들였는지도 엿볼 수 있다.

"어릴 적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엄마 대신 자두 한 접시가 식탁에 놓여 있었죠. 말랑하고 검붉은 것으로만 골라 먹었고 그때 맛 본 그 달콤함은 자두 맛 사탕으로까지 옮겨갔을 정도죠."

이창효의 말대로 자두는 그의 유년시절의 행복한 기억의 산물이다. 화가로서 어른이 된 그에게 자두의 상징성은 고향의 향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창효는 단순히 자두를 대상으로 한 정물화를 그렸다기보다는 어머니의 사랑이 가득한 그리움을 자두의 형상을 빌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사무친 그리움은 자두의 열정적 붉은 색으로, 따뜻했던 어머니의 젖가슴은 단맛을 물씬 머금은 뽀얀 분으로 상징화된다.

대지의 신 '데메테르'가 품었던 씨앗이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기도를 자양삼아 열매를 맺었고, 어린 시절 이 자두를 맛본 이창효가 고향의 향수를 소환함으로써 땅이 지닌 생산력은 재생력으로 환원했다. 이 재생력이 다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함축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치유의 힘을 갖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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