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부실대인가, 충실대인가

이권효 계명대 특임교수

이권효 계명대 특임교수. 동양철학박사
이권효 계명대 특임교수. 동양철학박사

지방대 현실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신입생을 채우기 어려워 대학 존립이 위태로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 대학을 선호해 지방대는 곧 폐교가 속출한다는 전망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관심을 촉구하는 주장도 이어진다. 필요한 진단이고 주장이지만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특히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 그렇다. 지방대를 살려야 한다는 이유로 입학하는 경우는 없겠기 때문이다.

학생 모집이 어렵다는 우려가 많아질수록 지역 대학의 신입생이나 재학생은 더욱 위축될 것이다. 분위기가 이러면 지방대에 다닌다는 열등감이나 상실감, 무기력에 사로잡혀 취업에도 큰 지장을 주게 된다. 겉으로는 학교에 다니지만 기회를 엿보다 휴학이나 자퇴를 하려는 '두 마음'은 강해질 것이다. 재학생들이 지방대를 부끄럽게 여기며 만족하지 못하면 신입생 모집은 더욱 어려워진다. 지역 대학의 뿌리를 뒤흔드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빠진다. 입학 정원을 줄이고 학과를 통폐합하는 식의 피상적 대응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몇몇 대학생에게 서울의 대학에 대한 인식과 이미지를 물어봤다. 지방대보다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고, 그래서 취업에도 유리할 것이라는 대답이 공통적이었다. 지방대는 부실하다는 불신이, 서울과 수도권 대학은 충실하다는 기대감이 놓여 있다. 지역 자체보다는 대학이 부실한가, 충실한가 하는 기준이 더 깊이 작동하는 현실을 면밀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지방대(지역대)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지방대에도 부실대와 충실대가 있다. 서울이나 수도권 대학도 마찬가지다. 경북 포항에 있는 포스텍(포항공대)은 지방대로 인식되지 않는다. 포항은 전반적인 지역 여건이 대구보다 부족하다고 할 수 있지만 국내외에서 학생들이 포스텍을 찾아온다. 부실대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방의 대학과 서울의 대학이라는 지역 경계를 넘는 새로운 기준은 '부실대인가, 충실대인가'라고 할 수 있다. 충실한 대학은 어디에 있든 학생과 학부모가 신뢰할 것이다. 부실한 대학은 어디에 있더라도 입학을 싫어할 것이다. 고교생과 학부모는 대학의 사회적 평판에 구체적인 정보를 가지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학생 입장에서 부실대와 충실대를 판단하는 중요한 현실적 기준은 수업 수준이다. 자기가 수강하는 수업이 차별적 경쟁력을 가진 최고 콘텐츠라고 판단하면 자신감을 갖고 대학 생활을 알차게 가꿀 수 있다. 그렇게 될 때 "서울의 부실대에 다니는 것보다 대구의 충실대에 다니고 싶다"는 학생도 많아질 것이다. 유학생도 마찬가지다.

요즘 대학생은 특정 대학 안에서만 유통되는 교육에 갇히지 않는다. 양질의 온라인 콘텐츠가 다양한 방식으로 아무런 경계 없이 넘친다. 많은 분야에서 대학 교육을 위협한다. 학생 입장에서는 자신이 다니는 대학의 교육 수준이 최고라는 확신을 하지 못하면 마음이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울과 그 외 지역의 사회적, 경제적 환경 차이는 큰 편이다. 그렇지만 대학 교육의 환경이 기존과 크게 달라지는 현실도 동시에 직시할 필요가 있다. 대학을 서울과 지방이라는 지리적 틀 속에만 가두면 학생들은 지방대와 지역을 더욱 외면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정부 정책이나 지원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부실대인가, 충실대인가. 지역 대학들이 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느냐가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 기준이 되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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