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가 '안보단체 화합한마당 축제'가 있었다. 행사에 참석한 내빈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한 인사가 연단에 올랐다.
그는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한 후, "여러분! 야구 경기에서 4번타자에게 거는 관중들의 기대가 대단하죠?" 뜬금없는 야구 얘기에 장내가 잠시 조용해졌다. 그러고는 그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제가 바로 네 번째 축사를 하게 된 4번타자입니다." 그러자 1천여 명의 관중들이 와~ 하고 함성을 질렀다. "따라서 여러분이 저에게 거는 기대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일순간 또 조용해졌다. "제발 좀 짧게 끝내 달라! 그렇죠?" 그러자 장내는 박수와 환호로 뒤덮였다. 잠시 박수 소리가 가라앉자 "그래서 저는 짧게 끝내겠습니다." 또다시 장내는 박수와 환호로 가득 찼다. "우선, 오늘의 화합한마당 축제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는 대한민국 안보 역군인 여러분들의 뜻을 받들어 여러분들이 필요로 하는 정책을 수립, 추진함으로써 여러분들을 위한 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을 약속드립니다. 이번 축제를 다시 한번 축하드리면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축사가 끝나자 장내는 온통 환호와 박수 소리로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연단에서 내려와 자리에 앉았지만 박수와 환호는 끊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일어나 두 팔을 들어 환호에 화답했다.
박신한 대구지방보훈청장이 이처럼 열렬한 환호를 받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행사장에 모인 관중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축사를 했기 때문이 아닐까?
요즈음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련 땅 투기 논란과 의혹들이 일파만파 거세지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와중에 주무 부처 장관이란 인사는 "LH 직원들이 택지 개발 정보를 모르고 투자했을 것"이라고 두둔하는 발언을 해 국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어떤 근거에서 그런 말씀을 하느냐'는 국회의원의 질문에 "제 경험상으로 볼 때 그렇다"고 답변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LH 사장을 역임하고 국토부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는 자가 '투자 가치가 없는 맹지를 구입해서 쪼개기에다 보상가 높은 용버들나무를 촘촘하게 심어둔 현장'을 보고도 그런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걸 보면 과연 정상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이 인사는 2019년 4월, 제4대 LH 사장에 취임해 1년 4개월간 사장직을 역임했다.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LH 직원들이 광명·시흥 일대 토지를 집단 매입한 시기와 겹친다. 따라서 LH 직원들이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편법 투기한 것으로 판명 날 경우 조직 관리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LH는 2019, 2020년 권익위 종합평가에서 모두 4등급을 받았다. 이 또한 그가 재임했던 시기의 평가다. 그런데도 그는 LH 사장 재직 시 청렴을 수도 없이 외쳤다고 한다.
'백언불여일행'(百言不如一行)이라 했다. 백 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의 실천과 확인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다. 무릇 공직자라면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를 헤아려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부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논어 안연 편에서 공자는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이라 했다. 국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얻지 못하는 국가는 존립 자체가 어렵다는 말이다. 모든 공직자와 위정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이 말, 작금의 현실이 암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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