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러빙 빈센트

영화 '러빙 빈센트'의 한 장면
영화 '러빙 빈센트'의 한 장면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가슴이 아린다. 늘 사랑에 실패했고,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했으며 그가 평생 몸 바쳐 그린 그림들은 세인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정신병과 불운에 시달리다 37세에 생을 마감하고 나서야 사람들은 그를 다시보기 시작했다. 훗날에야 '현대미술은 반 고흐에게 큰 빚을 졌다'는 말로 그를 칭송하며 '위대한 화가'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었다.

유일하게 그의 옆을 지킨 것이 동생 테오다. 테오는 수백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고흐를 정신적, 물질적으로 후원했다. 얼마나 형제애가 강했던지 고흐가 죽고 6개월 뒤 테오도 세상을 떠난다.

'러빙 빈센트'(2017)는 이런 고흐를 흠모하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2017년 개봉해 놀라움과 함께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이번 주 재개봉으로 극장가에 다시 걸렸다.

영화 '러빙 빈센트'의 한 장면
영화 '러빙 빈센트'의 한 장면

고흐는 워낙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 그를 그린 영화들이 많았다. 커크 더글라스 주연의 '열정의 랩소디'(1956)처럼 그의 불같은 예술혼을 그린 영화도 있었고, '반 고흐: 위대한 유산'(2013)처럼 그의 죽음의 진실을 찾아가는 영화도 있었다. 줄리안 슈나벨 감독은 그의 혼미한 정신을 관객에게 체험시키듯 하는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2018)를 내놓기도 했다.

'러빙 빈센트'는 극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이다. 화가들이 직접 손으로 그린 그림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유화 애니메이션이다. 모든 인물과 장면들이 고흐의 작품을 재현했다. 짙게 바른 물감의 질감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 미디어 아트 전시를 보는 듯하다.

요즘 애니메이션은 디지털 기술을 적용해서 복사한 그림을 수정해 만들기에 예전에 비해 품이 덜 드는 편이다. 이에 비해 '러빙 빈센트'는 상상을 초월한다. 제작기간 총 10년. 125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해 6만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 고흐의 작품 800여 점 중 130여 점이 이 영화에 녹아들었다.

영화 '러빙 빈센트'의 한 장면
영화 '러빙 빈센트'의 한 장면

'러빙 빈센트'는 반 고흐가 세상을 떠나고 1년이 지난 1891년 프랑스 아를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테오에게 보내는 고흐의 마지막 편지를 배달하면서 죽음의 의문을 풀어가는 줄거리다.

우체국장의 아들 아르망은 아버지의 소원에 따라, 고흐의 마지막 편지를 테오에게 직접 전해주는 여정을 시작한다. 테오의 행방을 찾기 위해 먼저 물감 상인인 탕기 영감을 찾아간다. 술을 권하며 그는 테오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고흐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해주며 주치의 가셰가 수상하다는 점을 일러준다.

고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아르망은 그의 죽음이 석연찮다는 것을 알면서 서서히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가셰 박사의 집을 찾아간 그는 가정부로부터 고흐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그의 삶에 빠져든다.

고흐는 주변 사람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가난하고 힘든 농부들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담으려고 노력했고 그리고 그들의 등에 비춰지는 빛을 진실되게 담아냈다.

탕기 영감과 가셰 박사를 비롯해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이들이 고흐의 작품을 바탕으로 그려진 것이다. 언젠가 한 번쯤은 봤음직한 그림들이다. 시대를 넘어 고흐의 체취와 붓놀림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별이 빛나는 밤', '까마귀가 있는 밀밭' 등 유명한 그의 작품들도 움직이는 그림으로 나와 눈 호강을 시켜준다.

영화 '러빙 빈센트'의 한 장면
영화 '러빙 빈센트'의 한 장면

더글러스 부스, 제롬 플린, 시얼샤 로넌 등 배우들이 목소리 연기를 했다. 배우들이 목소리만 녹음한 것이 아니라 직접 연기도 했다. 그 움직임을 촬영한 영상본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려 섬세한 표현이 가능했다.

이 영화는 고흐의 죽음을 파헤치는 과정들을 그리지만, 마지막은 삶의 편린들을 모아 고흐의 아픈 자화상을 그려낸다. 푸른 눈에 다크 브라운의 턱수염, 야윈 얼굴, 우수와 슬픔이 가득한 빈센트다.

그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성 대신 이름인 '빈센트'를 서명으로 남겼다. 아버지와의 불화 때문에 성을 쓰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 빈센트는 자신을 낳기 1년 전 어머니가 사산한 형의 이름이기도 했다. 빈센트에서 이미 무한한 슬픔이 묻어난다.

고흐의 마지막 편지는 이랬다.

"화가의 삶에서 죽음은 아마 별 것 아닐지 몰라. 별을 볼 때면 언제나 꿈꾸게 돼. 난 스스로 말하지. 왜 우린 창공의 불꽃에 접근할 수 없을까? 혹시 죽음이 우리를 별로 데려가는 걸까? 늙어서 편안히 죽으면 저기까지 걸어서 가게 되는 걸까? 늦었으니까 자러 가야겠어. 잘 자고 행운을 빌게.

악수를 보내며, 사랑하는 빈센트(Loving Vincent)가"

한없이 외롭고, 힘들고, 아팠던 한 남자가 우리에게 행운을 빌며 악수를 청한다. 보고 또 봐도 가슴이 저리고 쓰린, 고흐 아니 빈센트다. 95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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