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가 친문 진영과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대리전으로 비치는 모양새다. 이 지사 쪽에선 LH 배후설이 '가짜 뉴스'라고 못박았지만, 여권 일각에서는 건설업계 주도권을 두고 벌어지는 양쪽의 신경전이란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이 지사는 11일 "더불어민주당 내 갈등을 부추기는 근거 없는 낭설과 가짜 뉴스가 넘쳐나고 있다"고 했다. LH 사태의 배후에 이 지사가 있다는 이야기가 돈 까닭이다. 이 지사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지상 최대의 이간 작전이 시작됐다"며 "이재명 탈당에 따른 4자 구도가 펼쳐지면 필승이라는 허망한 뇌피셜도 시작됐다"고 적었다.
이는 9일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주재한 마지막 당무회의 때 이 지사의 좌석 배정을 두고 양쪽 관계자가 충돌 직전까지 이르렀다는 보도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 지사 측은 이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LH 사태를 폭로한 민변 소속 서정민 변호사와 김남근 변호사가 이 지사의 최측근이기에 뒷말은 계속 무성하게 퍼지고 있다.
이 지사 쪽의 거듭된 부인에도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는 LH 사태를 친문과 이 지사 쪽의 대리전 양상으로 파악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최근 이 지사 쪽에서 LH 사태를 기점으로 '재보궐 선거 이후엔 자리가 없다'는 식으로 캠프 구성의 명확한 선 긋기에 나섰다. 의원 40여 명도 이 지사 쪽으로 이미 붙었다"고 밝혔다.
또 "LH에 이어 경기주택도시공사(GH)의 투기 의혹 조사가 시작될 것이란 이야기가 돌면서 양쪽의 대리전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정부 합동조사단이 LH에 이어 GH를 정조준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런 예상들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LH는 중앙정부 산하 공기업이지만 GH는 경기도 산하 공기업이다.
10일 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정부 합동조사단은 LH가 주도한 3기 신도시 외 GH가 벌인 수도권 주요 택지지구 토지와 아파트 관련 투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4일 언급한 "국토교통부와 LH는 물론 지자체 소속 개발공사는 임직원 전체를 조사하겠다"는 발언도 '특정한 의도'가 있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다산 신도시에 큰 관심이 쏠린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 다산 신도시 등을 중심으로 조사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산 신도시는 '신도시'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지만 국토부 주도의 신도시 사업이 아니다. GH의 사업이다.
또한 정부 합동조사단이 겨냥하고 있는 3기 신도시 사업은 1·2기 때와 확연히 다르다. 3기는 '지역 참여형'이다. 이제까지 신도시 개발은 국책 사업으로 국토교통부가 중심이 돼 진행돼 왔다. 하지만 GH는 3기 신도시 사업에 적극 참여했다.
경기도는 2019년 남양주 왕숙 1•왕숙 2•하남 교산•과천 등 LH가 주도한 3기 신도시에 공동사업시행자로 참여를 밝힌 바 있다. 3기 신도시 과천지구의 지방공사 참여비율은 GH 30%와 과천도시공사 15%로 잠정 확정되기도 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최근 GH가 신도시 사업의 중심부로 이동하자 이재명 지사를 향한 건설업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또 분양가가 주변 시세의 90% 수준으로 산정될 거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니 건설업계 전체가 대선 승패를 차치하더라도 이 지사에게 줄을 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했다.
현재 분양가는 분양가 상한제에 따라 주변 시세 대비 50~60% 수준으로 책정된다. 하지만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2월 9일 고분양가 심사 시 주변 시세와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심사 기준을 개편하고 오는 22일부터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변 시세에 근접하는 가격에 분양가가 책정되면 무주택자는 청약 당첨에 따른 '로또 분양' 기회를 잃지만 건설업계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
HUG는 "시세의 90% 수준으로 분양가를 산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며 주변 시세를 일정 비율로 고려한다는 것일 뿐"이라고 했지만 가격 인상에 대해선 사실상 인정했다.
현재 정부는 LH를 대신할 3기 신도시 사업 시행자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3기 신도시 사업 가운데 90% 지분을 가진 LH 대신 8.6%를 갖고 있는 GH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안도 고려 대상으로 올라와 있다. 하지만 GH에서도 투기 의혹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GH의 시행 능력이 신도시를 감당할 수준이 아니라는 부정적 여론도 강한 상태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LH 사태에 이어 GH의 사업의 투명성 여부와 신도시 참여 여부 등이 대선 쟁점이 될 수도 있다"며 "이 지사가 가짜 뉴스라며 LH 사태 배후설에 대해 강한 부인에 나선 것도 이러한 점 등을 고려한 것 아니겠냐"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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