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태형의 시시각각] ㊷ 대조영 후예가 사는 경산 발해마을

우리나라 유일 대조영 후손 집성촌인 경북 경산시 남천면 송백2리 발해마을. 춘분날인 20일
우리나라 유일 대조영 후손 집성촌인 경북 경산시 남천면 송백2리 발해마을. 춘분날인 20일 '대조영 춘계대제'를 지낸 후손들이 발해 기상을 그린 벽화를 보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후손들과 경산시는 잊혀진 발해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발해마을'로 가꾸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발해 후손들이 손수 제작해 마을 입구에 내 건 발해기가 봄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발해 후손들이 손수 제작해 마을 입구에 내 건 발해기가 봄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발해마을 대조영 흉상. 태씨 남자 142명의 얼굴사진 710장을 분석해 그린 대조영 영정을 토대로 제작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발해마을 대조영 흉상. 태씨 남자 142명의 얼굴사진 710장을 분석해 그린 대조영 영정을 토대로 제작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발해마을 상현사 내에 모신 대조영 영정. 춘분날인 20일 발해 후손들이 춘계 대제를 올리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발해마을 상현사 내에 모신 대조영 영정. 춘분날인 20일 발해 후손들이 춘계 대제를 올리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발해마을 큰길 외벽에 그린 대조영과 발해장수 벽화.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발해마을 큰길 외벽에 그린 대조영과 발해장수 벽화.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지난 2013년 5월 27일 발해 왕궁터에서 가져온 흙. 발해 정효공주묘를 재현해 그곳에 영구 보관할 예정이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지난 2013년 5월 27일 발해 왕궁터에서 가져온 흙. 발해 정효공주묘를 재현해 그곳에 영구 보관할 예정이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발해 후손임을 알리는 문패. 30호 중 27호가 발해 후손이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발해 후손임을 알리는 문패. 30호 중 27호가 발해 후손이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경산시 남천면 송백2리 발해마을. 발해 마지막 15대 애왕의 아들 광현태자가 민중 수 만명과 함께 고려로 망명한 이후 후손들이 영순현(예천, 문경 일원)을 거처 임진왜란 직후 이곳으로 세거지를 옮겨왔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경산시 남천면 송백2리 발해마을. 발해 마지막 15대 애왕의 아들 광현태자가 민중 수 만명과 함께 고려로 망명한 이후 후손들이 영순현(예천, 문경 일원)을 거처 임진왜란 직후 이곳으로 세거지를 옮겨왔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말 탄 장수들이 거침없이 만주벌을 달립니다.

땅을 울리는 말 발굽소리, 하늘을 찌르는 함성이

골목 곳곳에서 생생한 벽화로 되살아났습니다.

"고구려 옛 땅을 호령하던 우리 조상들이지"

벽화앞에 선 후손들의 입담이 그칠 줄 모릅니다.

경북 경산시 남천면 송백2리 발해마을.

우리나라서 유일한 대조영 후손 집성촌입니다.

30호 중 27호가 백주 태(太)씨 영순공파 일족입니다.

대조영이 세운 발해가 운을 다해 마지막 15대 애왕의 아들

광현세자가 고려로 망명한, 그 황족의 후손들입니다.

태(太)는 고려때 대조영의 대(大)와 같은 의미로 통용돼

고려사 2권에서부터 후손들은 태씨로 기록됐습니다.

수 년 전, 조용하던 이 마을이 술렁거렸습니다.

'고구려·발해는 옛 중국의 지방 정권….'

중국은 동북공정을 일사천리로 해치웠습니다.

역사학자를 동원해 2002년부터 단 5년 만에

우리 고구려·발해사를 중국사로 둔갑시켰습니다.

고조선, 고구려, 발해, 고려로 이어 온

수 천년 한민족 역사 한 축을 통째로 가져갔습니다.

"조상의 뿌리를 가져가다니 참을 수 없었습니다."

후손들은 십시일반 돈을 풀고 의기투합했습니다.

먼저 태씨 남자 142명 얼굴사진 710장을 분석해

대조영 정부 표준 영정(제86호)을 만들었습니다.

대조영 흉상을 세우고, 발해기도 만들어 걸었습니다.

발해 왕궁터를 찾아 정기 어린 흙도 한줌 가져왔습니다.

집집마다 '발해 43세손 태00' 문패를 달고

매년 춘분날엔 영정 앞에서 황제복으로 향을 사릅니다.

몇해 전부터는 경산시가 발벗고 나섰습니다.

'발해문화 현창사업'으로 박물관·역사관·고왕전을 짓고,

발해 3대 문왕의 딸 정효공주묘도 재현할 예정입니다.

후손들은 역사관에 동북공정을 반박하는 자료로 채워

대한민국 발해 교육장으로 가꿀 예정입니다.

698년 건국 926년 멸망.

고구려의 대를 이어 동모산에 첫 도읍을 정하고

독자 연호를 썼던 황제의 나라, '해동성국' 발해.

중국과 결이 다른, 분명 한민족의 '시간'이였습니다.

신라가 못 다한 남북국시대 역사의 한 축이었습니다.

동북공정 20년. 중국 학생들은 이제 교과서에서

우리의 고구려·발해를 '그들의 역사'로 배웁니다.

훗날 통일이 될 그날, 잘못되면 고구려의 북한도

그들의 역사, 중국 땅으로 뺏으려들지 모를 일입니다.

"내가 발해다"

핏줄로, 잃어버린 역사를 되살리려는 발해마을.

봄바람에 마을 어귀 발해 깃발이 힘차게 펄럭입니다.

발해마을 상현사 앞에 발해국 태씨의 뿌리와 민족사를 기록한 비석. 고려사에 기록된 발해 왕족의 고려 망명 및 고려에 뿌리 내린 과정 등을 담았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발해마을 상현사 앞에 발해국 태씨의 뿌리와 민족사를 기록한 비석. 고려사에 기록된 발해 왕족의 고려 망명 및 고려에 뿌리 내린 과정 등을 담았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태재욱(80) 발해마을 발해역사문화보존회장이 족보 영인본을 꺼내 이 마을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족보 원본은 국학진흥원에 보관돼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태재욱(80) 발해마을 발해역사문화보존회장이 족보 영인본을 꺼내 이 마을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족보 원본은 국학진흥원에 보관돼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발해마을 큰길 외벽에 그린 발해장수 벽화.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발해마을 큰길 외벽에 그린 발해장수 벽화.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발해 첫 도읍지 동모산을 배경으로 그린 발해 고왕 대조영 벽화.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발해 첫 도읍지 동모산을 배경으로 그린 발해 고왕 대조영 벽화.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춘분날인 20일 발해 후손들이 춘계 대제를 올린뒤 기념촬영을하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춘분날인 20일 발해 후손들이 춘계 대제를 올린뒤 기념촬영을하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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