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곽명옥 씨 모친 故 박세연 씨

마지막 나들이 때 송해공원서 딸 모습 보며 환하게 웃었지요
병원에서 뜨끈한 돼지고기 수육 한 접시 먹고 싶다고 하셨지요

2018년 곽명옥 씨가 언니와 함께 모친 박세연씨를 모시고 다녀 온 송해공원 여행에서 찍은 사진. 가족제공.
2018년 곽명옥 씨가 언니와 함께 모친 박세연씨를 모시고 다녀 온 송해공원 여행에서 찍은 사진. 가족제공.

나는 아직도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곁에 없기에 더욱 그립다. 어머님이 떠나신 지 삼 년, 어머니가 사셨던 성당못 주변은 여전히 아름답고, 어머니 목소리도 쟁쟁하게 들리는 듯하다.
"엄마, 먹고 싶은 음식 있나요?"라고 묻자 어머니는 "뜨끈한 돼지고기 수육 한 점이 먹고 싶구나"라고 했다. 부랴부랴 장만한 음식을 맛있게 드셨다. 또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묻자 짜장면이라고 했다. 중화요리 식당으로 달려가 짜장면을 사 왔다.
무엇인들 못 해 드리랴, 그러나 어머니가 먹고 싶은 음식은 비싼 청요리도 아니었고,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먹는 스테이크도 아니었다.

우리 형제자매는 저마다 하는 일이 있어서 서로 시간을 조율해 가며 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나 역시 시간을 쪼개가며 어머니를 만나러 갔습니다. 어머니께 해드릴 수 있는 게 무얼까. 사업장 문 열기 전인 이른 아침 시간에 밥을 싸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식사만이라도 어머니와 함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머니 병세가 악화하자 호스피스 병동으로 모시기로 하였다. 어머니 생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자 나는 병원에서 잠을 잤다. 그렇게 어머니 곁에서 두 달간 잠자리를 같이한 가을날, 어머니는 91세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2018년 10월이었습니다. 우리 자매는 어머니를 모시고 송해공원에 다녀왔습니다. 나이 든 두 딸은 어머니 앞에서 마냥 재롱을 떨었습니다. 딸들의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환하게 웃었지요. 아마 어머니와의 마지막 나들이가 아닐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가을동화처럼 예쁘고 아린 추억을 만들었지요. 나름대로 어머니 떠나시기 전에 후회 없이 해드리려고 했는데, 돌아보니 별로 해드린 게 없어 마음이 허하네요.

어머니 생각이 간절한 어느 날에 글로써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를 위해 이 글을 바친다.
구수한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진다. 방학이 되어 모처럼 3대가 모였다. 돼지고기 수육이 먹고 싶다 하여 잘 아는 식육점에서 암퇘지 삼겹살을 구입하여 평소 실력대로 삶았다. 고기가 익을 동안 상추쌈에 된장 만들고 싱싱한 풋고추 양파도 곁들였다. 한 시간쯤 지나서 끓는 고기에 칼끝으로 쿡 찍으니 하얀 물이 솟는 걸 보니 잘 익었다는 표시다.

식탁에 식솔들을 불러 앉히고 고기를 숭덩숭덩 썰어주니 모두 꿀맛이라며 엄마도 함께 먹자고 한다. 난 좀 있다 먹겠다고 다른 일을 하는 척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의 성화에 작은 토막 한 점을 입에 넣고는 목구멍까지 처 오른 설움에 엉엉 울고 말았다.

엄마는 신장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구순 노인을 수술도, 항암도 하기에는 너무 기력이 따라주지 않았다. 의사도 포기하고 약해진 부분에 보충하여 진통제를 쓰기로 한 것이다. 병원의 식사 시간은 빠르고 정확하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는 여유 있는 척하지만 반찬 몇 가지 장만해서 도착하는 시간은 매일 허겁지겁이다. 아침을 드시고 엄마 턱밑에서 응석을 떨며 물었다.

"엄마 지금 제일 먹고 싶은 게 뭐예요"

"의사 선생님이 허락해 주실런지, 먹고 죽더라도 뜨건, 뜨건한 돼지고기 수육 한 접시가 제일 먹고 싶다."

엄마는 우리에게 수육을 즐겨 해 주셨지만 엄마가 아프고 난 후로 한참 드시지 못하셨다. 쇠갈비도 아니고 청요리도 아닌 돼지고기 수육을 먹고 싶다 하시니 마음이 아프다.
언니가 금방 사 온 따뜻하고 야들야들한 수육 한 접시, 세 모녀 머리를 맞대고 먹었다. 그날, 세상에서 제일 맛있고 가슴 아픈 만찬을 즐겼다. 처음부터 적신 눈물을 양파 때문이라고 하였지만 다시는 함께할 수 없는 그리운 내 엄마의 돼지고기 수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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