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허무 개그로 끝난 수사지휘권 발동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이정수 법무부 검찰국장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수사팀의 모해위증교사 의혹 관련 수사지휘권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이정수 법무부 검찰국장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수사팀의 모해위증교사 의혹 관련 수사지휘권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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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법치를 무너뜨렸다. 법치의 파괴자들은 모두 법무부 장관. 조국 전 장관은 검찰을 '쿠데타 세력'이라 음해했고, 추미애 전 장관은 억지 누명을 씌워 검찰총장을 징계했고, 박범계 장관은 민정수석까지 내치며 폭주하다가 망신만 당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대권'의 꿈을 꾸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수사지휘권은 독일에서는 발동된 적이 없고, 일본에선 단 한 번 발동됐을 뿐이다. 일본에서는 그 일로 법무대신이 옷을 벗었다. 그런 수사지휘권이 1년 사이에 대여섯 번이나 발동됐다. '선출된 권력'을 등에 업고도 법무장관 셋이 스트라이크아웃을 당했다. 그래도 이 나라에 아직 시스템이 살아 있다는 얘기다.

한명숙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는 '증언'이 아니라 '물증'으로 입증된 바 있다. '위증 교사'를 했다는데, 애초에 교사할 '위증'의 실체 자체가 없었다. 위증으로 처벌받은 것은 외려 법정에서 증언을 번복한 한만호 씨. 그의 '비망록'은 이미 당시 재판에서 검토되어 신빙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은 바 있다.

모해 위증을 했다는 사람은 재소자 김모 씨와 최모 씨. 이 중 김모 씨는 위증 교사는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작년 4월 진정서를 낸 최모 씨 역시 정작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 조사에서는 "한만호 전 대표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넸다고 말한 걸 들었다"며 위증 교사는 없었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10대 2의 압도적 표차였다. 검찰총장 징계를 주도한 한동수·신성식·이종근·이정현 등 친여 검사들 중에서도 기소에 찬성한 것은 둘뿐. 나머지 둘은 기권을 했다. 부장검사가 모두 7명이니, 박범계 장관의 뜻대로 고검장들 없이 회의를 부장들끼리만 했어도 3대 2로 불기소 결정이 나왔을 거라는 얘기다.

애초에 대검에서 불기소 결정을 내렸을 때 "합리적 의사결정이 아니었다"고 반발했던 임은정 검사. 한명숙 사건 1심의 수사를 담당했던 부장검사의 설명 후에 질문하라고 하자, "없다, 질문할 자리가 아닌 것 같다"며 사양했다고 한다. 그러더니 기껏 하는 소리가 "만장일치가 아닌 데 감사"한단다.

위증을 한 이들이 10년이나 지난 시점에 자신이 위증을 했으니 자기를 처벌해 달라고 진정을 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누군가가 검찰을 모해하려고 재소자에게 위증을 시킨 것이다. 이 사건 역시 공작으로 드러난 채널A 사건과 함께 민주당 민병덕 의원의 법무법인 '민본' 변호사의 작품이다.

황당한 것은 법무부 장관들이 의도가 불분명한 재소자들의 증언(?)만을 근거로 두 번이나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는 사실이다. 법무부가 전과자들과 손잡고 검찰을 때려 대는 나라는 전 세계에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다. 두 장관이 발동한 두 번의 수사지휘권의 근거가 모두 정권 측의 자작극으로 드러났다.

도대체 왜 그렇게 한명숙에게 집착하는 것일까? 한명숙의 유죄를 무죄로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은 본인들도 잘 안다. 아니, 그 전에 재심 신청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왜 애먼 수사 검사들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우지 못해 안달이 난 걸까? 이 부조리한 욕망의 정체는 대체 뭘까?

일단 대통령 자신이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한 전 총리도 검찰 수사의 억울한 희생양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권력을 쥐고 있는 동안에 그를 정치적으로 사면할 의무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검찰 개혁'의 정당성을 말해 줄 가시적 상징을 찾는 여당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진다.

정권의 뜻은 분명하다. 무조건 기소를 하라는 것이다. 사실이 아니더라도 좋다. 일단 기소만 되면 대국민 사기극을 벌일 최소한의 근거가 마련된다. 설사 나중에 법원에서 무죄가 나오더라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대중이 이 사건을 까맣게 잊어버리고도 남을 시간이다.

뭘 얻었는가? 한명숙 구하려다 한명숙의 죄상만 드러냈다.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존재감을 과시하려다 망신만 당했다. 그 과정에서 팔에 권력의 완장을 차고 '검찰 개혁'을 외치는 그자들이야말로 청산해야 할 적폐, 척결해야 할 정치검사임이 드러났다. 이쯤 되면 장관, 옷을 벗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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