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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대구영화의 티핑포인트

이승우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창작지원팀장
이승우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창작지원팀장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는 장면은 참 비현실적이었다.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을 때부터 믿기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봉준호 감독 스스로도 후보지명 뒤 인터뷰에서 이 상황이 "인셉션 같다"고 얼떨떨함을 토로했을 정도니 말이다.

기껏해야 국제영화상 정도 수상하지 않을까 내심 생각했다. 그 전까지 한국영화가 아카데미에서 보였던 가시적인 성과라고는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외국어영화상 최종후보에 오른 것이 전부였으니, 외국어영화상 수상도 대단한 성과였었다. 그러나 세간의 예상을 기분 좋게 깨버리고 '기생충'은 단박에 최고 영예의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움켜쥐었다. 정말 대단한 성취였다.

'설국열차', '옥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던 봉준호였기에 그의 성공은 예전부터 어느 정도 예견되었다. 언젠가 터지리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큰 폭발을 일으키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어느 현상이 아주 미미하게 진행되다 어느 순간 균형을 깨고 예기치 못한 일들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시점을 일컫는 티핑포인트(Tipping Point)의 실제 예시를, 우리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을 통해 생생하게 목격한 셈이다.

봉준호발 티핑포인트는 올해 아카데미 6개 부분에 후보로 오른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 최고의 기대작 중 하나인 '노매드랜드'를 연출한 중국계 여성감독 클로이 자오에게로 이어지며 아시안 웨이브라는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미나리'의 낭보를 접하고 얼마 뒤,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올해도 전주국제영화제에 대구지역에서 활동 중인 감독들의 작품이 경쟁에 올랐다는 것이었다. 장편 부문에는 감정원 감독의 '희수'가, 단편 부문에는 박재현 감독의 '나랑 아니면'이 경쟁작에 이름을 올렸다. 매년 출품되는 수백 편의 작품을 제치고 경쟁작으로 선정된 것도 대단하지만, 영화 제작의 모든 인프라가 수도권에 밀집된 상황 속에서도 해마다 성과를 전해오는 대구 독립영화계의 성취도 놀랍다.

주요 영화제에서 주목하는 작품을 매년 배출하는 대구 독립영화계의 저력은 타 지역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라 할 만하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로컬시네마가 꾸준히 제작되고 성과를 내는 곳은 전국적으로 대구와 강원 정도가 유일하다. 특히 작년 한 해 대구에서 제작된 독립장편 영화는 5편으로 이들 작품이 만들어 낼 성과도 기대할 만하다.

봉준호의 경우가 그랬듯 티핑포인트는 반드시 징후와 조짐을 동반한다. 같은 맥락에서 대구 독립영화계의 계속된 선전은 뚜렷한 조짐이라 할 만하다. 대구영화의 티핑포인트도 분명 머지않았다.

이승우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창작지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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