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제6차 당 대회에서 김일성은 세계 전쟁의 위험을 없애고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고자 비핵지대, 평화지대를 창설함으로써 평화와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며 조선반도, 즉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지대를 언급했다.
세계 모든 지역에서 핵무기 시험 및 생산을 금지하며,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할 것을 주장했다. 한국전쟁 때 중공군의 반격을 저지하고자 트루먼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을 검토했던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미국의 전술핵무기가 한반도에 처음 배치된 시기는 1958년이었다.
이는 1948년 8월 대한민국군 창설 이후 우리 군이 미국에 크게 의존해 왔기에 핵우산이 될 남한과는 달리 북한에는 위협으로 작용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에 김일성으로서는 핵무기 철수를 연계시키는 전략적 발언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들고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핵 개발을 위해 1947년 구소련의 기술 원조를 바탕으로 우라늄 광맥 탐사를 해서 약 9천t의 우라늄을 소련에 보냈고, 1952년에는 원자력 연구 협약을 체결, 본격적으로 핵 기술과 핵 설비를 도입하여 1956년 영변에 원자로를 설치했다.
한국은 박정희 정부 때 자주국방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자 비밀리에 연구를 시작했으나 미국의 압박에 따라 핵 개발 정책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미국에 전달했고 노태우 정부 시기였던 1991년 한반도 비핵화를 선언했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에 배치된 전술핵무기를 철수했으며 한반도에서 핵의 불사용을 공포한 것이다.
북한은 2003년 1월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하고 국제적으로는 연막전술을 펼쳤다.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2016년 1월 4차 핵실험을 한 후 2016년 5월 제7차 당 대회에서는 자위적인 핵 무력을 강화하여 핵 강대국임을 밝혔다. 한편, 2021년 1월 제8차 당 대회에서도 핵보유국을 기정사실로 나타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핵무장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지난달 18일 열린 한미 외교장관과 국방장관의 2+2회담에서 나온 '한반도 비핵화'는 이미 1980년 6차 당 대회에서 김일성이 발언한 것이다. 이는 미국이 남한에 배치했던 전술핵무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한국에서는 이미 1991년 철수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핵은 북한의 핵뿐이다.
2009년 1월 국회에서 열린 남북경협특위에 참석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쟁점이 되었던 조선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의 차이에 대한 국회의원의 질문에 대해 답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조선반도 비핵화와 우리가 목표로 하는 북한의 비핵화는 차이가 있다"고 했으며, 한편 "우리가 생각하는 견해하고도 차이가 있다"고도 밝혔다.
따라서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 비핵화'와 한국이 사용해 온 '북한의 비핵화'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시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반도 비핵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라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비핵화에 대한 개념은 한반도 비핵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비핵화가 그동안 쟁점으로 다루어졌다.
그럼에도 북한이 내세운 한반도 비핵화의 화두는 북미 핵 협상 대결에서 새로운 국면으로 몰고 감으로써 전 세계가 비핵화될 때까지 핵무기를 포기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읽히는 대목이며 세계 비핵화 범주에 진입시키려는 의도로 비치고 있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이재명, '선거법 2심' 재판부에 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