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해인 수녀의 시 가운데 '지혜를 찾는 기쁨'이 있다. "하루의 길 위에서/어느 것을 먼저 해야 할지 분별이 되지 않을 때,/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어찌할 바를 모르고 망설임만 길어 질 때,/어떤 사람과의 관계가 불편해서 삶에 평화가 없을 때,/가치관이 흔들리고 교묘한 유혹의 손길을/뿌리치기 힘들 때, 지혜를 부릅니다./책을 읽다가 이해가 안 되는 때에도,/글을 써야 하는데 막막하고/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때에도 지혜를 부릅니다.(후략)"
오늘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것이 지혜이다. 그런데 이 시대가 부르는 지혜를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구약성경에 나오는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었다. 그가 시편과 잠언의 많은 구절을 지었고, 전도서와 아가서의 저자여서 지혜의 왕이라고 하는 것일까? 시바 여왕이 지혜를 듣기 위해 솔로몬 왕을 찾아왔다는 놀라운 일화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어느 날 밤, 솔로몬이 기도하는 곳, 기브온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하나님은 뜬금없이 솔로몬에게 너는 왕이 되었는데 가장 가지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물음에 대한 솔로몬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부국강병을 구하지도 않았고, 자기의 무병장수를 구하지도 않았다. 그가 구한 것은 '듣는 마음'이었다.
'듣는 마음'은 히브리어로 '레브 쇼메아(לב שמע)'이다. 레브는 '마음'이고 쇼메아는 '듣는'이란 뜻이다. 이 말이 영어로는 'listening heart' 또는 'discerning heart'로 번역된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것은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지혜'와 '민초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이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이 탁월한 선택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셨다. 솔로몬의 모든 지혜는 하늘의 소리와 백성을 소리를 듣고자 하는 그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오래전에 다니엘 골만(Daniel Goleman)은 'EQ 감성지능'에서 '21세기부터 다가오는 천년은 우울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21세기의 사회적 문제는 자기애와 우울에서 온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자기애가 지나치면 자신만을 사랑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는 자기도취적인 사람이 되고 만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간주하면서 상대방을 무시하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한다. 이것은 타인에 대한 강한 분노감과 적대감으로 발전한다. 골만은 자기애와 우울은 결국 공감능력이 부족한데서 온다고 했다. 공감(Einfühlung)의 깊은 뜻은 '안에서 느끼다'가 아닌가. 우리 시대의 모든 불행이 바로 '마음을 다해 다른 사람의 마음'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데 있다.
지난 몇 주에 걸쳐 일어난 사건들은 모든 사람들을 분노와 당혹스러움으로 몰아넣었다. 경북 구미의 한 빌라 빈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3세 여아 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다. 미국 애틀랜타에서 발생한 아시아인을 향한 총기 난사 사건은 또 어떤가.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멈추라'는 소리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매일 같이 매스컴을 통해 쏟아내는 정치인들의 독설은 또 어떤가. 오늘 우리 시대에 필요한 지혜는 마음 다해 '듣는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영국의 소설가 이언 매큐언(Ian McEwan)은 이렇게 말한다. "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이 되었을 때의 느낌을 상상하는 능력은 인간성의 핵심이자 연민의 본질이며, 도덕의 시작이다."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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